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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23] 충무로별곡

기사승인 2016.08.15  00: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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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스럽지 못한 여자임을 직감한다. 역시 팬티도 밴드 튕기는 소리가 날 만큼 함부로 다룬다.

[골프타임즈=박하 작가] 미세스 박이 익숙한 솜씨로 맥주병을 따 두 사람에게 한잔씩 따라 준다.

“노래 신청할까?”

“아직 좀더 있다가요. 너무 빠르잖아요.”

“미리 하는 것이 나아. 좀 있으면 사람들이 들이닥쳐 늦어질 수 있으니까 그러지.”

“그럼, 못 하는 거죠. 뭐, 노래에 미친놈도 아니고….”

“이따 후회하지 마.”

“하하하….”

주인 여자가 노래를 주문하자 구본하는 짐짓 점잔을 뺀다.

함봉호도 덩달아 무안해져 딴전을 피운다.

“어, 언니! 이리 와. 여기 앉아.”

그때 갑자기 미세스 박의 목소리가 커진다.

호객 행위에 일가견이 있는 여자답게 누군가를 찍은 것이다. 상대는 엉뚱하게도 유미리 일행이다. 방금 전에 들어와 어딘가 앉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자리를 못 잡았던 모양이다.

유미리와 콧수염이 구본하의 옆에 와 앉는다. 의자 두 개를 사이에 둔 자리다.

“안녕하십니까? 저, 기억하시겠어요?”

구본하가 대뜸 유미리에게 접근한다.

함봉호는 구본하의 세련된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역시 어설픈 프로답다.

“어? 여긴 웬일로…? 안녕하세요?”

유미리도 구본하를 알아보고 반긴다.

그러자 콧수염이 유미리의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 좀더 조신하게 굴라는 뜻일 성싶다.

“저랑 잘 아는 영화 담당 기자예요. 괜히 나설 필요 없어요.”

유미리가 콧수염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구본하와 함봉호도 알아들었지만 못 들은 척한다. 이미 그 정도는 눈치로 때려잡고도 남는다.

“저희 매니저예요.”

유미리가 구본하에게 콧수염을 소개시킨다.

그제야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눈다. 함봉호는 앉은 채로 고개만 끄덕인다. 별로 달갑지 않은 사람 야릇한 향수 대신 술 냄새를 맡는다. 영화배우들은 대개 입술과 목덜미 언저리에 향수를 진하게 뿌린다. 유미리도 그들 일행처럼 이미 일차를 거친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마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유미리의 옆에 있는 콧수염이 매니저이든 애인이든 구본하로서는 상관없다. 솔직히 매니저가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여러 스태프라면 몰라도 매니저와 단 둘이 술을 마신다는 것은 좀처럼 드문 일이다. 어쩌면 애인이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영화 일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유미리에게는 독버섯 같은 존재일 가능성도 있다. 혹은 뜻밖에도 방송사 PD이거나 아니면 영화 쪽 브로커일 수도 있다.

“요즘은 무슨 작품을 하지요?”

구본하는 잠시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를 서둘러 깬다.

“어? 구 기자님은 저번 작품 발표회 때 안 오셨나요?”

유미리가 좀은 불만스럽다며 입술을 봉긋 내민다.

선입관일까. 역시 영화배우의 입술은 보통 여자들의 것과는 어딘가 좀 다르다. 작으면서도 도툼한 것이 앙증맞다. 한 입 쭉 빨아 당기면 그대로 다 빨려 들어갈 듯 달콤하게 생겼다.

“저번 초봄에 요 앞 호텔에서 작품 발표회를 가졌잖아요.”

“아, 맞아요. 제목이 뭐였지요? 나도 가긴 간 듯한데, 기억이 안 나네요.”

“워낙 그런 것들이 많아서 그렇겠지요. ‘여름은 간다’란 영환데….”

“아하!?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제목인데….”

“호홋, 제목이야 다 거기서 거기지요.”

“아, 아니지요. 요즘은 제목을 잘 지어야 흥행한다구요.”

“저야, 거기까지 관여할 필요는 없지만…. 어디 좋은 제목 있으면, 구 기자님이 한번 지어 주세요.”

구본하와 유미리는 의외로 대화가 잘 통한다.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함봉호가 듣기에도 그렇다. 함봉호는 새삼 구본하의 역량을 확인한다.

“여기도 차라리 합석하지 그래.”

웨이터가 맥주를 가져오자 주인 여자가 눈치 없이 말한다.

그러자 역시 콧수염은 아무런 응답이 없다. 이는 곧 합석이 불필요한 시간 낭비임을 간증하는 셈이다. 결론은 뻔하다. 구본하는 쉽게 알아챈다. 콧수염은 더 이상의 접근을 싫어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 아닙니다. 거기도 엄연히 손님과 함께 왔는데, 괜히 방해할 필요가….”

구본하는 재빨리 말을 받아치고 함봉호에게 건배를 제의한다.

함봉호는 마지못해 맥주잔을 들어 마신다. 속으로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다. 불쑥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듯한 구본하가 안쓰러운 탓이다.

“구 선배, 신경 쓰지 말고 한잔 쭉 들이켜요. 오늘은 적당히 마시고 갑시다.”

“그럴까?”

“저 옆 남자가 싫어하는 눈친데요.”

“글쎄,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어. 매니저는 아닌 것 같고….”

“에이, 그러다 들어요. 조용히….”

“안 들려. 잡담 소리 때문에….”

구본하는 그쯤에서 함봉호의 말을 끊고 다시 한잔 들이킨다.

어느덧 「흑백 스탠드바」 실내는 손님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각기 코너는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므로 손님을 더 많이 끌어 모으려고 경쟁하게 마련이다. 그런 연유로 단골손님을 더 많이 붙잡을 수밖에 없다.

노래가 시작되면서 손님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말을 상대에게 전하는데 훼방꾼이 있으면 성질이 날카로워지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목소리도 커진다. 결국 어느 시점에 가서는 대화마저 멈춰야 한다. 더 이상 진행해 봤자 목만 아플 뿐이다.

구본하와 함봉호도 몇 번의 대화를 시도하다 그만 멈추고 만다. 구본하는 유미리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려다 포기한다. 그 대신에 노래를 주문한다. 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주인 여자가 맡은 코너여서 당연히 순서가 앞당겨질 터이다. 사실은 진즉에 예약을 한 셈이므로 불법 새치기와는 거리가 멀다. 구본하는 「장미빛 스카프」와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함봉호는 「님은 먼 곳에」와 「그대 그리고 나」를 쪽지에 적어 준다.

두 사람의 십팔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본하는 분위기를 잡는 반면 함봉호는 조용한 성격을 드러낸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때에 따라 뽕짝도 얼마든지 소화해낼 수는 있다. 다만 그런 음악도 잘 음미해 내는 구본하에 비해 함봉호는 소극적이다.

구본하는 맥주를 연거푸 들이킨다. 함봉호는 그와 달리 조심스럽게 술을 마신다. 기회를 보다가 도망치려는 생각이 그를 압도한 까닭이다. 그러나 몰래 도망칠 수는 없다. 엄연히 선배인 구본하에게 일방적으로 그만 가겠다고 통보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두고두고 시비를 걸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는 꼴이 된다. 굳이 그런 일로 책잡힐 짓을 할 필요는 없다.

함봉호는 슬그머니 일어난다. 차가운 맥주를 많이 마신 탓인지 갑자기 아랫배가 살살 아파 온 탓이다.

“함 기자, 벌써 도망가려고?”

구본하가 도망치는 줄 알고 브레이크를 미리 밟는다.

“아, 아니에요. 화장실 좀 가려고….”

함봉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

구본하는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인다.

함봉호는 혼자 웃는다. 사실은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그대로 슬쩍 나갈까 하는 생각도 가지기는 했다. 하나 구본하가 미연에 사전 포석을 한 터이다.

함봉호는 화장실로 들어가 양변기에 앉는다. 당분간은 아늑하다. 좀처럼 뱃속의 이물질이 쉽게 나오려고 하지 않자 약간은 신경질이 난다. 여자용인 옆 칸에서 누군가 변기의 물을 흘러내린다. 이 술집은 구식 스탠드바답게 화장실도 조잡하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 터인데, 깔끔한 주인 여자답지 않게 화장실 만큼은 형편없다. 당연히 방음 장치가 되어 있을 턱이 없다.

옆 칸에는 방금 전의 여자가 나가고 다른 누군가 들어와 스커트를 내린다. 여자가 방정맞게 속옷을 벗는다. 조심스럽지 못한 여자임을 직감한다. 역시 팬티도 밴드 튕기는 소리가 날 만큼 함부로 다룬다. 지지리도 못난 여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싸구려 팬티는 아닌 듯하다.

함봉호는 슬그머니 호기심이 발동한다. 까치발로 옆 칸을 훔쳐보고 싶은 욕망이 불끈 솟는다. 새삼스럽게 자신이 변태가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든다. 모든 남자들이 누구나 한번쯤은 이 따위 못난 생각에 빠지는 것일까. 쓸데없이 자신을 합리화시키려는 생각이 타협점을 못 찾고 헤맨다.

옆 칸 여자의 오줌 줄기가 요란하다. 함봉호는 웃음을 애써 참는다. 자신의 아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하다. 묘한 성충동이 인다. 상대가 무척이나 강한 여자이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뇌파가 부르르 떤다.

누가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짧게나마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함봉호는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함봉호는 화장실 탓이라고 자신을 타이른다.

“뭘 그리 오랫동안 있었나?”

구본하가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으로 묻는다.

“큰 거 보느라고….”

함봉호는 대답과 동시에 입술을 실실 쪼갠다.

“아니,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

“어? 유미리, 갔나 보죠?”

“아니, 저기 오잖아. 화장실에 다녀오나 본데….”

“네?!”

“왜 그리 놀래?”

“흐흐흣….”

함봉호는 웃음을 간신히 참는다.

만약 제대로 웃는다면 토악질을 하듯 고통스런 웃음일 터이다. 그러므로 참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

“구 선배, 저 여자 정말 세던데요.”

“응? 뭐가?”

“거시기가요.”

“그게 뭔데?”

“하이고, 구 선배는 왜 그리 센스가 없어요? 오줌 줄기 말입니다.”

“내가 자네와 같은가? 유부남하고 총각 차이가 뭔가?”

“에이, 그 정도는 알아야지요.”

“그래, 얼마나 세길래 그래?”

“어매, 하여간 굉장합디다.”

“그래, 그게 세면 거시기도 강한가?”

“그럼요.”

“에이, 난 그게 그렇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하하핫….”

그때 유미리가 자리에 와 앉는다. 함봉호는 곁눈질로 그녀를 힐끔힐끔 살핀다. 술 탓일까. 어이없게도 유미리를 안아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영화배우는 보통 여자와 색다를 것이라 믿었던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도대체 신체 구조가 다를 턱이 없는데, 함봉호는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이 우습다. 그와 함께 허망한 웃음만 연방 새나온다.

“허, 역시 유부남은 틀리군.”

“뭐가 그래요? 남자들은 다 똑같지요.”

“후후…, 그런가?”

“아무튼 영화배우의 독특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닐세. 아무튼 축하하네.”

구본하의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에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린다.

“무슨 재미있는 일 있어요?”

유미리가 불쑥 끼어든다. 언제 다가왔는지 이미 옆 자리에 와 앉아 있다. 이제는 콧수염이 동떨어진 신세가 되어 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함봉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는 뭔가 훔치려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가슴마저 조마조마하다.

그래도 설마 들었을 리가 없다. 다만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아, 네. 우리 함 기자가 웃기는 얘기를 해가지고요.”

“아, 그랬어요.”

“어때요? 이번 작품은 흥행에 성공할 것 같은가요?”

구본하는 가까스로 말을 돌려 댄다.

이럴 때는 주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 물론 그와 반대로 무관심이 최선일 수도 있다.

“글쎄요. 저는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잘 안 되더라구요.”

“그럼, 감독이나 스태프에 문제가 있는 거지요.”

“호홋․, 그렇다고 저도 책임이 없지는 않아요.”

“에이, 그게 아니지요. 유미리 씨는 그만하면 연기를 잘하는 편이에요.”

“어머머,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그러다 추락하면 전 어떡하라구요?”

“하하핫, 아닙니다. 비행기가 아니라 진짜인데 뭘 그래요?”

구본하는 짐짓 웃음소리를 크게 낸다. <계속>

박하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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