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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의 문화 단상] 고문(古文)이야기, 랩퍼 비와이 신앙고백

기사승인 2016.09.12  0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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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 선입견 깬 대중을 감동시킨 용기

틀을 깬 참신, 문화의 세계에선 고금을 막론하고 남다른 창의성을 지녀야 성공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한낮에는 아직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올해 여름의 혹서를 떠올리면 이 정도 더위는 견딜만합니다. 조석(朝夕)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다가올 가을의 쾌적한 정취가 더욱 기다려집니다. 자연의 이치상 옛것은 지나고 새것이 오게 마련입니다. 오늘은 진부한 옛 문체를 힘써 버리고 새로운 문체를 추구했던 ‘고문’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최근에 유명해진 비와이(BY)란 래퍼가 있습니다. 케이블방송 연예오락전문채널인 Mnet의 ‘쇼 미 더 머니’라는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다섯 번째 시즌에서 우승한 힙합가수입니다.

랩이 대중을 열광시키는 음악이긴 해도 필자 연배에겐 아무래도 친숙하지 않습니다. 랩 특유의 빠른 비트도 부담스럽지만 무엇보다 랩의 가사내용에 대한 선입관 때문입니다. 필자의 청년시절, 미주대륙에서 여성 혐오, 폭력과 마약거래를 미화하는 이른바 갱스터 랩이 등장해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랩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선 자기 자랑, 돈 자랑, 여자 후리는 자랑 등의 가사가 판을 쳤고, 최근엔 다른 사람을 폄하하는 이른바 디스(Diss)가 유행 중입니다.

그런데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비와이란 래퍼는 많이 독특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랩도 듣고 가사를 읽어 보고선 필자의 선입관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심지어 이번 학기에 강의하는 중국의 당송시대 고문운동(古文運動)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비와이의 랩은 종교방송이라면 모를까 일반채널에선 부적합한 종교적인 신앙고백이 주종을 이룹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대중들은 그에게 열광하고 있습니다. 물론 발군의 랩 실력을 인정받은 결과이겠지만, 그의 고집스런 신앙적 용기도 의외로 대중을 감동시킨 결과라며 랩 평론가들도 당황하고 있습니다. 연예계 특성상 특정 종교를 앞세워선 대중의 수용 폭이 아주 좁아지거나 악플의 대상이 되기 십상(十常)인데 말입니다.

비와이가 방송 경연(競演)에서 불렸던 『Forever』라는 랩의 가사입니다. “스물넷인 난 매달 십일조 봉투에 100만원을 100장씩 넣을 거야. ……현재 난 꿈나무들의 Role model, 근데 애들아 나는 저걸 따라가지 않아, 더 가치 있는 걸 바라보지. 영원한 걸 따라가렴. ……나는 눈에만 보이는 달콤한 우상들에겐 난 평생 절하지 않아. 당연하지. ……무언가를 얻지 못해도 난 걷지, 믿음으로. 역시 주님께 맡겼지, 그가 원한다면 가고, 아님 말아.” 이런 유형의 랩 아티스트를 본 적이 없어 매우 충격적입니다. 그리고 랩 경연의 우승곡 『자화상』의 가사입니다. “내 죄들은 이미 사하여 졌어. 새로운 사랑과 축복으로 인해 내 아침엔 난 다시 나음을 입어. 난 네가 말하는 것과 달리 내 가치를 알아. 특별하고 고귀함을 가진 단 하나뿐인 자녀임을 말이야. God makes no mistake……” 크리스천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놓고 기독교 복음을 랩합니다. 필자는 비와이의 이 랩들을 듣자마자 당송고문가들의 문학론이 연상되었습니다.

중국의 당나라 중기에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을 중심으로 고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에서 중당(中唐)시기까지의 산문은 대부분 사육변려문(四六騈儷文)이였습니다. 산문인데도 운문처럼 한 구(句) 안에 글자의 수가 넉 자나 여섯 자만 들어가도록 제한을 둔데다, 운율을 따지고 화려한 수식만을 추구하여 실용성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고문운동의 영수 한유는 변려문의 폐해를 지적하고, 진(秦)나라 이전 곧 선진(先秦)시대의 문장처럼 형식의 제한 없이 자유로운 산문체로 문장을 쓸 것을 주창(主唱)했습니다. 말이 고문운동이지 실제로는 당시 사람의 생각을 당시의 말로 자유롭게 표현하자는 신(新)문체운동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고문운동은 단순히 문체만 개혁하자는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본질적으로 글은 유가 성현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전도(傳道)의 수단으로 인식했습니다. 말하자면 고문운동은 단순한 문체운동이 아니라 유가에서 발견한 사상투쟁의 참신한 방법론이었습니다.

성당(盛唐)을 거쳐 중당시대에 이르러 불교와 도교가 민간에 깊숙이 침투하여 유가의 지배체계를 위협했습니다. 그래서 지배계층인 유가로선 더 이상 강 건너 불 보듯이 할 수 없었습니다. 한유는 『원도(原道)』라는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불교와 도교를 막지 않으면 유가도리는 전해지지 않으며, 불교와 도교를 금지시키지 않으면 유가도리는 펼쳐지지 않는다.” 불교와 도교의 세력 확장을 막고 공자와 맹자의 인의(仁義)도리를 전하기 위해선 비실용적인 사육변려문보다 표현이 자유로운 고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한유의 고문운동과 비와이의 랩 모두 자신의 장기(長技)를 빌어 자기신념을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양자는 확실히 일맥상통합니다.

한유는 이론만 앞세우지 않고 몸소 명문장을 다량으로 창작하여 고문운동이 성공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복고를 기치로 내걸었으나 사실은 새로운 문체의 창조 곧 창신(創新)이 골자입니다. 새 문체로 공맹의 가르침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래퍼 비와이도 개인의 신앙고백적인 가사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역시 기존의 틀을 깬, 참신(嶄新)이 골자입니다. 문화의 세계에선 고금을 막론하고 남다른 창의성을 지녀야 성공하나 봅니다. 이번 주는 자신만의 창의성을 소신 있게 펼쳐보길 축복합니다. 아울러 옛 글이나 전통 도덕에서도 가치를 재발견하는 혜안도 가지길 기원합니다. 그것이 고문운동의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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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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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 본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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