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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性풍자 콩트 제18화] 난 지금 기뻐요

기사승인 2016.10.04  00: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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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받아들이는 남자의 몸, 그것은 충격의 환희이었다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현금 카드 좀 줘.”

수옥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빨리!”

수옥의 재촉에 인채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잠깐 나갔다가 올게.”

수옥은 인채의 소주잔을 비우고 밖으로 나왔다. 그의 카드를 가지고 나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카드란 카드는 모두 빼앗겨 빈 털털이나 다름없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인채의 통장에서 삼십만 원을 꺼냈다.

“일어나. 갈 곳이 있어.”

수옥은 서둘러 술값을 지불했다.

“택시 타.”

수옥은 차도에까지 들어서서 택시를 잡았다.

“아저씨! 과천으로 가세요.”

수옥의 과천이라는 말에 인채는 당황했다. 그녀는 과천을 의식적으로 피했었다. 인채 역시 그녀와 함께 과천의 현대미술관조차 얼씬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교포 화가 작품을 보고 싶었지만 그녀와 함께 가기가 불안해 포기했다.

삼각지에서 과천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동작대교에서부터 교통 체증이 심할 시각이었는데 의외로 차가 쑥쑥 빠졌다. 수옥은 과천까지 오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린 채 입을 다물었다. 그는 수다쟁이인 수옥이가 말이 없자 더욱 불안했다.

택시에서 내린 수옥은 호텔로 직행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

수옥은 호텔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옷을 벗어던졌다. 잠깐 사이에 알몸이 됐다.

인채는 호텔 입구에서부터 방까지 들어오는 동안 마주쳤던 사람들을 더듬었다. 다행히 아는 얼굴이 없었다. 집은 호텔에서 사오 분도 채 안 걸릴 만큼 지척이었다.

“어때? 이승희보다 더 섹시하지 않아?”

수옥은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다양한 몸짓을 했다. 수옥은 인채를 사랑했다. 그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항상 넘쳤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거리를 두었다. 다가서면 그 만큼 뒤로 물러났다.

그의 조심스러운 배려에 처음에는 신뢰와 함께 고마움을 느꼈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없이 기뻤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존심이 상했다. 그에게 사랑받는 여자가 아니라 인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 사랑한다고 했지?”

수옥은 자존심이 상하자 열 살이나 위인 그에게 말을 놓았다.

“사랑하면 날 가져.”

수옥은 그의 어깨를 조금씩 밀었다. 인채는 뒤로 밀리다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러지 마.”

“날 가져.”

수옥은 인채에게 위선자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우리 십분만 침묵하자. 그리고 다시 얘기하자.”

수옥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자제시킬수록 더욱 흥분됐다. 유부남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유치한 생각을 버리라고 요구했다.

“난 인형이 아니야. 난 여자야!”

수옥은 어떤 말에도 대꾸하지 않는 그에게 지쳐 울음을 터트렸다. 걷잡을 수 없는 흐느낌이었다.

“일어나. 목욕을 하면 기분이 나아질 거야.”

수옥은 침대 위에 쪼그려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인채의 거부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수옥은 그가 안아 올리자 목을 끌어안았다. 그는 어느새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놓았다. 그녀는 발부리에서부터 차올라오는 뜨거움에 몸을 맡겼다.

“밖에서 기다릴게.”

수옥은 그의 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매달렸다.

“나가지 마.”

“…….”

“나 기운 없어. 혼자 목욕 못해.”

수옥은 흐느끼면서도 그의 의지가 무너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 두려움과 기쁨의 순간이 밀려오고 있음을 느꼈다. 처음 받아들이는 남자의 몸, 그것은 충격의 환희이었다. 그의 절제됐던 욕구는 커다란 화산으로 터졌다. 한번 분출하기 시작한 욕망은 산과 들을 태웠다. 거대한 바위도 녹여 계곡으로 흘러내리게 했다.

“집에 들어가야죠?”

수옥은 그의 가슴에 안긴 채 말을 했다. 정말 하기 싫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정을 존중하고 싶었다. 애당초 그와의 만남에서 완전한 사랑까지 욕심내지 않았다. 집 밖의 여자로 만족하리라, 생각했다.

“내 걱정 말고 집에 가요.”

수옥은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미안해. 역시 널…….”

수옥은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난 지금 기뻐요. 행복해요.”

수옥은 그러나 기쁘지 않았다. 행복하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과 순결을 다 바쳤는데 왠지 슬픈 바람이 불어왔다. 무시당하고 있다는 분노에 스스로 그의 집에서 가까운 호텔을 택했고, 마침내 그의 여자가 됐다. 그토록 바라던 것을 차지했는데 가슴이 허전했다.

“괜찮겠어?”

“걱정 마요.”

수옥은 애써 웃었다. 그가 망설임 끝에 호텔방을 나가자 냉장고에서 술을 꺼냈다. 어둠 속의 아파트 단지, 저곳 어딘가에 그와 그의 아내의 보금자리가 있다는 현실에 키득키득 웃음이 터졌다.

그의 체취가 남아 있는 침대에 누웠다. 스물 두 살의 수옥은 자신의 사랑이 어디에 머무른 것인지 불안했다. 그가 나간 호텔 룸, 그녀는 처음으로 불륜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난 사랑을 하고 있는 거야.”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및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정병국 性풍자 콩트는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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