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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역사] 신화가 부활하고 있다

기사승인 2016.10.23  0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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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집단적인 원형 무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골프타임즈=김기은 기자] 한 나라의 근원을 신화 속에서 찾지 못하면 그 나라의 역사적 근간이 흔들린다. 굳게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뿌리박고 있는 신화는 우리 민족이 지향하는 삶의 근간인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신화를 한갓 옛이야기로만 치부해 버리면 그 나라의 구성원들의 삶은 풍요롭지 못하고 참 가볍게 살게 된다. 뿌리가 얕아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고 만다. 신화는 오랜 시대의 축적되고 뭉쳐진 하나의 힘의 결정체라 본다. 그 신화 위에서 하나의 역사는 탄생하는 것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역사가 시작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신화는 우리가 살면서 가져야 할 또 하나의 강역이고 삶의 지평이다. -편집자 주-

오늘날 우리는 우주를 정복하고 최 첨단화된 디지털 멀티문화의 컴퓨터 시대를 살고 있다. 얼마 전 인공지능을 지닌 알파고가 인간 바둑의 최고수를 이기는 대 사건이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냈으면서도 인간을 능가하는 제2의 인간, 즉 기계인간의 능력 앞에서, 최고의 능력을 지녔다는 인간이 나약하게 무너져버린 것이다.

인간은 생명공학의 발달로 이제 생명체도 마음대로 복제할 수 있게 되었고, 바이오테크놀로지Biotechnology의 발달로 인해 인간이 지닌 육체의 나약한 한계를 뛰어넘어 무한한 능력을 지닌 초인으로 거듭날 수도 있게 됐다.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 신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시대에 신화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달이나 별이란 그저 우주의 한 부분이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아직도 꽃과 새를, 하늘과 땅과 같은 자연을 노래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사람들은 보름이 되면 둥근 달에게 소원도 빌어보고, 산을 오르다가 누군가가 쌓아놓은 돌탑을 보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을 얹으며 소원을 빌어본다.

지역 축제 때면 행사장에서 소원을 적어 새끼줄에 꿰어놓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문지방을 밟지 말라고 하고, 야외에서 술을 마실 때면 첫 잔을 따라 들판에 뿌리며 ‘고수레!’ 하고 소리친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혹은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거슬러 올라가면서 죽 이어져 온 것이다. 이런 것은 고대의 우리민족신화에서 온 것이며, 신화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민족의 집단적인 원형 무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신화의 나라이다. 부엌에 가면 조앙신이 있고, 변소에 가면 측신이, 문에는 앞문전신이 장독에 가면 철륭신이 있듯이 집안 구석구석에 신을 모시고 있었다. 동네를 지키는 마을신, 나라를 세운 국조신등 셀 수도 없을 만치 많은 신들이 북적거리며 사는 한국은 가히 만신전이라 할만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신들을 존중하기보다는 미신이라 터부시하며 은근 괄시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세계의 신들은 다시 부활하고 있다. 신화 속의 신들이 만화로, 소설로 광고 그래픽으로, 상품 이름으로 거듭 태어나기도 하고, SF의 모티브로,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 3D영상으로 부활시켜 더 생생하게 더 가까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한다.

신화는 또 하나의 역사 강역이고 삶의 지평이다
오늘날 세계는 신화에 열광하고 있다. 북유럽 신화며 그리스의 신화는 오늘날 수많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며 세계시장에서 엄청난 부를 창출하여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생활 속에 많은 신을 모시고 사는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국의 민속 신들을 이용하여 문학, 만화, 애니메이션 시장을 구축하고 있으며 여기에 파생된 것들로 게임이며 장난감 캐릭터 문화상품 등 수많은 콘텐츠를 생산해내어 자국뿐 아니라 세계시장까지 점령해가고 있다.

뒤늦게 신화의 시장성에 눈뜬 중국은 산해경을 모티브로 ‘몬스터 헌트’란 영화를 만들었다. 신화에 나오는 기이한 인물들을 깜찍하고 귀여운 몬스터 캐릭터로 만들어 내어 동양적인 몬스터세계를 완성해낸 것이다. 산해경은 우리의 신화임에도 불구하고 콘텐츠로 재탄생시켜 세계시장을 선점해버린 중국에 의해 세계는 중국의 신화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우리는 동북아공정으로 인한 역사침탈뿐만 아니라, 신화마저도 중국시장에 빼앗기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그 심각성을 모른 채, 우리 신화를 찾으려하기보다는 서양신화만 기웃거리고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신화는 현재의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아주 오래된 고대인들이 지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폄하할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라며 미신 취급하거나 아주 어린 아이들이나 읽는 전래동화로 취급해버린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신화는 ‘삼국유사’에 실린 몇 편의 건국신화 외에는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나마도 단군신화는 너무 간단하게 축약되어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혹은 타파되어야할 종교로 취급받고, 민간 신화는 무속인들 속에서나 겨우 명맥이 유지하며 미신 취급을 받거나, 유아들의 전래동화로 격해 되었으며, ‘마고’와 같은 창조 신화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잘 알지도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다. 우리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신화처럼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고, 흥미를 끌만큼 대작을 만들 만한 영웅이 없다고. 과연 그럴까? 우리 국민들은 우리의 신화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일까? 혹시 신화하면 단군신화 하나, 좀 더 보탠다면 고주몽신화 정도까지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신화는 그 종류가 하도 많아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우리 신화를 크게 나누어보면 첫째, 건국신화가 있다. 어느 나라든 나라를 건국한 기원 신화가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고조선뿐만 아니라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고려 등과 관련된 많은 건국 신화의 영웅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이용하여 각색해서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주몽’이라는 TV 드라마가 그것들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SF영화들의 스토리나 인물들 까지도 신화를 모티브로 창조
어느 나라도 신화를 있는 그대로 영화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것을 모티브로 끌어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고 재창조 하여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많은 SF영화들의 스토리나 인물들 까지도 신화를 모티브로 하여 창조해내고 있다. 예를 들면 영화 “메트릭스”에서 샤먼 오라클과 레오 같은 영웅의 활약이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가 빈약해서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탄탄한 스토리는 모티브를 따와서 재창조하면 되는 것이다.

둘째, 창조 신화가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창조 신화가 있다. 어떻게 세계가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인간이 만들어 졌는지 우주의 기원이나 자연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들이다. 성서와 놀랍도록 상당히 흡사한 ‘마고 신화’ 태극을 들고 있는 ‘반고’, 여와 복희 등등 다양한 창조 신화를 가지고 있지만 많은 부분들이 중국 신화로 오인 받고 있으며, 우리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의 창조 신화들에 나오는 혼돈보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카오스를 더 잘 알고 있다. 이 카오스에서 영화의 주인공이나 악마가 탄생하게 되는 배경을 우리는 환타지 영화를 통해 심심찮게 만나고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홍수가 쏟아지는 영화 “하드 레인”은 홍수신화를 연상하게 한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얼마나 많은 외국 영화들이 신화를 차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셋째로, 무속 신화와 민속 신화가 있다. 무속 신화는 큰 굿 열두거리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가 잘 아는 바리데기도 여기에 속한다. 일곱째 딸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려졌다가, 죽은 부모를 살리기 위해 저승에 가서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돌아와 아비를 살린 뒤에 세상의 죽음을 관장하고, 죽은 영혼을 좋은 곳으로 보내 주는 구원의 여신 '바리데기'가 되었다는 슬픈 운명의 신 바리데기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흥미진진하고 탄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무속 신화의 주인공이 되는 신들은 인간으로 태어나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고 저승에 가서 신이 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우리의 민간 신앙과 연결되어있는 여러 토속 신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민간 신화 역시 종교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신이 되는 과정의 재미있고 인간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무속 신화와 흡사하다.

일본은 자국의 민속신화들로 수많은 에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 ‘센과 치에로의 행방불명’은 다양한 민속 신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오물 신까지 있다. 우리는 왜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고 있는 걸까? 우리에게 신화가 없어서일까? 아니다. 다만 우리의 관심이 없어서이다. 우리의 신화를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신화를 잊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나라를 잃어버렸듯이 역사도 신화도 잃어버렸다
일본의 식민통치기간동안 우리는 민족의 혼이 들어있는 우리 민간 신앙을 미신이라 배우며 타파해야할 사악한 것으로 배워왔다. 일본은 우리 신화들을 전래동화로 격하시킴으로서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했다. 우리는 나라를 잃어버렸듯이 역사도 잃어버리고 신화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신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지켜왔고, 천황마저도 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나라를 찾은 지도 70년이 지났다. 이제 잃어버린 우리 신화를 찾아야 한다. 독립이 되고도 우리의 무속 신화는 여전히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천덕꾸러기로 버려져 있었다. 그동안 근대화니, 도시화니, 새마을 운동이니, 세계화니 하면서 우리는 우리문화는 하찮게 선진국의 문화는 우월한 것으로 인식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처럼 신토불이, 즉 음식도 우리 땅에서 난 것이 좋은 것임을 깨닫게 됐고, 우리 것을 지키고 알리는 것이 세계화로 가는 길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신화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우리 신화가 그리스 로마신화처럼 서로 짜임새 있게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로 완결 된 통일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많은 신들이 있지만 각각의 신들과 각각의 이야기들이 따로 노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결코 우리 신화가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못해서가 아니다.

신화의 기원은 문학이 아니라 종교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서도 그 기원을 거슬러가다 보면 근동지방을 떠돌던 여러 신화들과 상당히 흡사함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구약 성서의 천지 창조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흡사하고, 성서 속 전쟁 스토리의 짜임은 오디세이의 전개방식과 상당히 흡사하다. 물론 성서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형식에 있어 당시의 문화적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을 수도 있다.

신화의 근원이 종교에서 출발하듯이 그리스 로마 신화도 종교에서 출발했을 터이고, 각각의 신들이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런 신화를 헤시오도스 같은 작가들이 ‘신들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호메로스 등 여러 시인이나 작가들이 가필하면서 오늘날 문학작품처럼 된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그리스로마신화’는 진정한 신화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학작품인 것이다.

대부분의 신화는 구전으로 전승된다. 신들의 이야기인 만큼 종교의식 속에서 제사장들을 통해 주전되는 것이다. 우리의 굿거리 열두 마당에 나오는 신들의 이야기도 그렇게 전승된다. 이것 중 일부는 설화로 변형되기도 하고, ‘전’이라는 고전문학작품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춘향전도 그 출발점은 신화일 수 있다. 춘향이 이 도령을 만나 잘 먹고 잘 살았단다 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굳이 사당을 세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남자에게 예쁜 하녀를 내세워 방에 들게 한 뒤 못생긴 춘향을 바꿔치기 하여 하룻밤을 지냈지만, 결국 춘향이 버림받고 목 메달아 죽은 그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는 춘향각 설화 이야기가 있다. 신화에 새롭게 이야기를 첨가하여 설화를 만들고, 문학 작품화 한 점에 있어서는 우리 조상의 콘텐츠 생산능력이 우리보다도 뛰어났던 거 같다.

그리스 신화는 작가들에 의해 다시 구성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엄격히 따지면 문학작품이다. 그렇기에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 다양한 갈등과 재미를 갖출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이것이 신화의 모델인양 생각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 신화나 동아시아, 세계 신화를 보면 그리스로마신화는 오히려 예외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신화는 단순할수록 원형에 가깝다
신화는 단순할수록 원형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신화는 오히려 신화의 본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신화가 최고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문화적 편견을 넘어서야 올바를 세계관을 이해할 수가 있다. 다른 신화가 무가치하다거나 우리의 신화만이 우월하다는 인식보다는, 우리의 신화도 돌아보고 신화속의 세계관을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신화를 보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신화는 어찌 보면 아직 야생화 상태이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이 야생화의 신화들을 찾아서 모으고 가꾸어야 한다. 가필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만들 필요성이 있다. 이제 신화는 그저 고루한 옛 이야기가 아니라 그 민족의 문화유산이다. 다양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참신하고 창의적인 문화가치를 창출해 내게 하는 문화적 광산인 셈이다. 한마디로 신화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돈이 되는 금광석인 것이다. 전 세계는 자국의 신화에 눈을 돌려 신들을 부활시킬 뿐만 아니라 복재하고, IT 기술로 새롭게 변형시키고 창조한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신들까지도 자신들의 것으로 끌어가려고 혈안이 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 신화를 외면할 것인가? 강대국들에 다 빼앗긴 다음에 “원래 우리 것인데…”하고 원망하고 한탄하려 하는가?

김기은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김기은(소설가)
국문학전공, 문예창작전공. 사당 청소년회관 강사 역임, 명지대 사회교육원 강사 역임 1993년 계간 「자유문학」 여름호 「배반하는 손」으로 소설 신인상으로 등단. 1996/ 「SBS 사랑의 징검다리(3인 공저), 1997/「장미가시」, 2001/ '몽상의 숲',2011 '나무늘보', 2010/'사슬', 「의혹」, 2013/「사람을 찾습니다」,2013/「어느 투명 인간의 수기」 등 중, 단편 소설 다수 발표.

창작 소설집 1995/ 창작소설집 ‘회색 낙엽’, 2010/ 짧은소설집 ‘인생, 길들이지 말라고요’ 2011/ ‘엄마 일기 어떻게 써?(글쓰기 지도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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