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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7]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두 개의 장례식을 위한 발라드

기사승인 2016.11.28  02: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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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참 기가 막혀서, 어떤 년 기둥서방 하고 있더라.”

[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경아, 재떨이 가져와라.”

“여보, 물 좀 줘.”

“영아, 그 옆에 아빠 담배 좀 집어 줘라.”

“담배가 얼마 안 남았네. 은희야 너 나갔다 들어올 때 담배 한 갑 사와라”

“민아 아빠 주머니에서 라이타 좀 꺼내와라.”

집에 들어오면 방구들에 앉아 세 딸이며 올케며 온 식구들을 다 시켜댔다. 오빠가 심부름을 안 시키는 것은 엄마뿐이었지만, 어떤 때는 엄마가 먼저 알아서 도와주었다.

예를 들면 오빠가 담배를 빼물면 엄마가 근처에 있는 재떨이를 집어 주는 그런 식이었다.

그런 오빠가 또 다시 하던 사업을 실패하고 들어앉아 있을 때였다. 분명 하는 일이 없었는데 올케한테 차비를 타서 일정한 이른 시간에 어딘가를 매일 나갔다.

그리고 밤늦게 들어왔다.

“나 참 기가 막혀서, 어떤 년 기둥서방 하고 있더라.”

어느 날 올케가 분통을 터뜨리며 그랬다.

어느 개소주 집에서 즙 짜는 일을 돕고 있는 걸 누가 보았다는 거였다.

남편 죽고 혼자 사는 여자인데 아들도 둘이나 있다고 했다. 딸만 셋인 올케는 아들에 대해 유난히 민감했다.

아들 찾는 엄마 때문에 첫 애 때부터 제왕절개 해놓고도 아들 때문에 무리해서 셋이나 낳았다.

그런데 셋째도 딸이었다. 대가 끊어지게 생겼다며 엄마는 늘 한탄이었다.

“너 어디 숨겨놓은 아들 없나?”

“어무이도 참, 좀 내가 그럴 처지나 되요?”

“야야, 처지가 되야 꼭 그러나? 아들이 있어야 대를 잇지. 내가 너를 어떻게 지켰는데, 대가 끊겨버리면 누가 그 제사를 다 지내냐. 네가 종가집 종손이다. 아버지며, 할머니며, 삼촌이며, 거기다가 우리 친정에 아들이 없어서 친정 제사도 맏딸인 내가 다 지냈는데.......”

“어무이 대에서 끝내야지, 별 수 있습니꺼. 어차피 언제 돌아 가셨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래도 지내야지. 어찌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제사라도 챙겨야지, 내 죽으면 누가 그 제사 다 챙길지 걱정이다. 나 죽은 다음에 내 제삿밥이나 얻어먹으려나......”

어디 가서 바람 피워서 낳아놓은 숨겨놓은 아들이라도 있다면 대 환영할 기세였다. 오빠랑 나랑 들을 때만 하는 소리였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다더니 어찌어찌 해서인지 올케가 그런 걸 알아버렸다.

“아이고, 쥐뿔도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뭐 물려줄 것 있다고 대를 찾아쌌는교.” 대놓고 그렇게 쏘아붙이며 엄마를 미워했다.

“야, 물려줄 게 왜 없냐. 통일만 되 봐라. 이북에 그 넓은 과수원하며 땅이 얼만데.”

“하이고, 집어치소. 만날 그 소리, 죽은 아들 불알 만지깁니더, 어무이는 그 잘난 아들 둬서 그리 호강하시는교. 내사 딸만 있어도 아쉬울 것 하나도 없십더. 죽은 다음에 제사를 지내든 말든 알 게 뭐꾜. 살아서나 호강 받고 잘 살면 됐지. 딸 가진 엄마 비행기타고, 아들 가진 엄마는 한강에 뛰어든다는 말 모르는교,”

올케는 마음속에 아들에 대한 피해의식과 응어리를 늘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아들 얘기만 나오면 과도하게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다.

오빠 얘기를 들어보니 그 집 여자에게 사체를 얻어 쓴 모양이었다.

돈을 갚으라고 하도 닦달을 해서 문 열고 닫을 때까지 거기 가서 그렇게라도 도우며 입막음을 하고 있다고 했다.

더구나 남편도 없이 두 아들 데리고 여자 혼자 절절매며 무거운 것을 들고 하는 것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이자도 못 갚고 있어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도와주는 거란다.

“부처 났다. 천당 가겠다.”

“부처는 극락왕생이다.”

“극락을 가든 천당을 가든 내만 따라 오지 마라. 난 지옥 갈기다. 당신이 천당 가고 극락가면 내는 지옥 갈기구마. 어디 가면 여기보다 몬(못)할까. 없이 사는 것 맨치로 징그럽은 게 어딨겠노.”

그날도 올케의 얘기는 늘 그렇듯이 삼천포로 빠졌다. 그러다 돈타령으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여자 문제는 끝난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올케는 또 다시 그 얘기를 들고 나왔다.

아들이 없다는 피해 의식에, 남편 외모 또한 한 인물하는지라 없는 가운데도 결혼 생활 내내 올케는 오빠의 여자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 때문에 부득이한 일 때문에 외박을 해도 대판 싸우고,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닦달을 하며 몰아세우고 악다구니를 쓰고 오빠 얼굴을 할퀴어 놓고 그랬었다. 그런데 이제 이혼까지 하고, 어찌 됐든 애들 아빠인데, 사라졌다는 데도 찾지도 않으려드니.......

부부란 돌아서면 남이라는 말이 실감이 갔다.

이십년 넘게 몸을 섞고 살아와 놓고, 오빠의 악연이란 한 마디에, 그렇게 하루아침에 마음이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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