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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45] 충무로별곡

기사승인 2016.12.08  0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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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이렇게 그의 불안한 신문사 직장 생활은 운명처럼 진행되어 갔다

[골프타임즈=박하 작가] 특히 신문사 놈들이 함봉호를 괴롭힌 증거는 여러모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애초에 보급소장을 시킬 것이라면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곳저곳에서 추천을 받아 입사시켰으면 경험이 없더라도 곧바로 보급소장에 앉혔기 때문이다.

바로 함봉호를 그보다 한 달 늦은 후배가 운영하는 동교동 보급소로 출근시켜 신문 배달을 시킨 경우가 그랬다. 물론 군대처럼 계급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최소한의 질서와 예의가 있는 것이 직장생활이 아니던가.

아무튼 함봉호에게는 그 어떤 보급소 자리도 주지 않고 무조건 죽지 않을 만큼 힘들게 뺑뺑이를 돌렸다. 아주 지독한 독종들이 판매국 조직이었다. 이들에게는 눈물도 빵도 없었다. 오로지 그가 스스로 회사를 그만둬야 신문사로서도 깨끗한 것이다. 함봉호는 도대체 그놈의 보훈유가족 입사제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토록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죽는 남자가 돼야 했던 함봉호는 힘들게 신문배달을 하고 술에 취해 잠든 후 다시 되풀이되는 노예의 시간을 즐겼다. 자신을 무참하게 학대하고 난 후의 희열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일종의 마약이었다. 차라리 이대로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깨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허무한 소망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게 고통스런 신문배달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시간은 쏜살같이 정말 잘 날아갔다.

그러구러 쓸쓸한 9월 추석이 지나고 어느덧 3개월이 다 되어 가는 어느 날 이동수 과장이 그를 불렀다. 광화문 보급소가 있는 건물 지하의 ‘서울다방’이었다.

“함봉호 씨, 그동안 수고했는데 당신은 우리 판매국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차라리 편집국 일과 맞는 사람인데 잘못 선택한 것 같아. 그러니 그만두는 게 낫겠어.”

함봉호는 죄인처럼 얼굴을 파묻은 채 이동수 과장의 엄명을 들었다. 그는 이 과장의 청천벽력 같은 발언을 듣고 어떤 말도 할 수 없어 바로 옆의 어항 속 물고기만 바라보았다. 자신처럼 멍청하게 생겨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입을 벌름거리는 금붕어를 바라보면서 순간 샘솟을 듯한 눈물을 애써 참았다. 그러다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 정신을 추스렸다.

“그러면 이 과장님, 한 가지 물어볼게요. 처음 승낙할 때 저에게 판매국의 사무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런 말 했지만 판매국 직원은 사무직이라고 따로 정해진 일이 있는 게 아니야. 현장에서 신문배달 관리를 하고, 사무를 보는 일도 겸해야 하니까 굳이 그것을 나눌 필요가 없지.”

“그렇다면 제가 판매국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저에게 무슨 지국장이라도 맡으라고 권유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 처음부터 지켜봤는데 지국장을 맡을 만한 조건이 안 돼 아예 권유하지 않았던 거지.”

“그럼 저보다 신문배달과 확장 경험이 없는 후배 직원들은 오자마자 바로 지국장에 발령 낸 이유는 뭡니까?”

“아, 그건 그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런 능력이 있으니까 그런 것이지.”

“아, 그렇습니까? 제가 볼 때는 저보다도 그런 능력이 없던데요.”

“…….”

함봉호가 정곡을 찌르자 이 과장은 아무 답변도 하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말하는 것이 구차해 그쯤에서 멈추고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다방을 빠져나왔다. 앞이 컴컴했다.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들이 애초부터 함봉호를 괴롭히기 위한 각본이었다. 눈물이 불쑥 나왔지만 그는 자신을 다독였다. 이럴 때는 가볍게 소주부터 한잔하는 것이 제격일 성싶었다. 허름한 시장 골목의 해장국집으로 들어가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켜 한 병을 비웠다.

그러자 그제야 한동안 잊힌 은사가 생각났다. 체면이고 뭐고 이제는 다 끝난 마당에 그 무엇도 필요 없었다. 그저 무조건 그간의 잘못을 솔직히 털어놓고 용서를 비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 못난 제자를 다시 받아들여 달라는 뜻이 아니었다. 세상물정 모르고 배신한 바보를 더 이상 제자로 삼지 말라는 마지막 부탁이었다.

함봉호는 술에 약간 취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집 전화를 은사가 직접 받았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소식이 없어 궁금했는데, 그래 잘 지낸 거야?”

“아, 선생님 뵐 면목이 없어 전화를 못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바쁘면 다 그런 거지, 뭐.”

“제가 신문사에 입사할 때 판매국인지 모르고 속아 들어와서 지금까지 고생만 하다가 오늘부로 퇴사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럼 그동안 판매국에서 일한 거야?”

“네.”

“어떻게 일한 거야?”

“처음에는 사무관리직이라고 해서 수락했는데 알고 보니 판매국 현장사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첫날부터 신문 확장 일을 하다가 결국 보급소 소장 자리는 주지 않고 배달 일만 시켰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저를 떠보며 테스트하는 줄 알고 꾹 참고 등신같이 열심히 죽으라고 일했습니다. 개포동 저층 주공아파트 같은 데는 1동에 1부가 들어갈까 말까 한 데를 수십 동을 돌려 밤 11시까지 돌려야 끝날 정도였습니다.”

“…….”

시인 은사는 한동안 어이가 없는지 말을 하지 않고 한숨만 푹 내쉬었다.

“이놈아, 그랬으면 진즉에 말했어야지. 아무튼 내일 사표 내지 말고 그냥 사무실에 출근해.”

잠시 후 은사의 말을 듣고 함봉호는 그 순간 하늘에서 든든한 밧줄이 내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함봉호는 다음날 개포동 저층아파트 현장의 보급소가 아닌 동자동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것도 정시가 아닌 회의가 거의 다 끝날 만한 시간에 어슬렁거리면서. 그러자 회의하던 이동수 과장과 소장들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 모두들 박수를 치십시오. 우리 함봉호 씨가 현장에서 너무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본사에서 불러들이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우리 모두 축하해줍시다!”

이동수 과장이 뜻밖의 말을 하며 박수를 유도했다.

함봉호는 이 과장의 변신에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밤새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기적에 한동안 정신이 얼얼했다. 잠시 은사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는 그 뜨거운 액체가 더 커지지 않도록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소장들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각 보급소 소장들은 익히 알고 있다는 듯이 그의 눈치를 보며 애써 모른 척했다. 강재구도 함봉호에게 눈길을 슬쩍 주며 눈웃음을 보이고는 곧장 거두어 갔다. 괜히 더 이상한 행동을 했다가는 이동수에게 밉보인다는 사실을 잘 아는 탓이다.

회의가 끝난 후 함봉호는 이 과장의 승용차 ‘포니’를 타고 본사 판매국으로 들어갔다. 거만했던 판매국장과 관리부장은 물론 모든 판매국 직원들이 함봉호에게 별다른 말도 하지 않은 채 냉랭한 공기만 흘렀다. 그 또한 어떤 일이 앞으로 벌어질지 모를 불안한 마음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자리가 마땅하지 않던 차에 주임사원이 마지못해 권해 준 판매관리부의 맨 끝 빈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할 일이 없는 것도 이상했던지 신규 구독자 명단을 정리하는 일을 시켰다. 다행히 그는 필체가 좋았으므로 글씨 쓰는 일에 제격이었다. 물론 갑자기 내근하라는 명령에 따라 간부들이 당황한 나머지 급조한 일거리였지만 그래도 함봉호로서는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후 판매국에서 내근을 하면서 함봉호는 적당하게 따돌림을 받기 시작했다. 이미 놈들은 그를 적당히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날짜가 흘러도 간부들은 역시 그에게 그 어떤 내색도 없이 그저 기본적인 단순 업무만 시켰다. 그러면서도 점심시간만 되면 그를 따로 떼어놓고 끼리끼리 식사를 다녔다. 그나마 바로 옆자리에 앉아 근무하는 나이가 든 이 주임만 이따금 함께 식사를 하러 가곤 했다.

그러다 보니 함봉호는 점심시간에 혼자 식사를 하러 갔다가 빨리 먹고 그대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다른 직원들은 식사를 마치고 당구를 치거나 낮술을 먹으며 점심시간을 철저히 이용했지만 함봉호는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내근을 한 지 보름 정도 지났을 무렵 어느 날, 갑자기 사장이 뒷짐을 지고 판매국 사무실로 불쑥 들어왔다. 함봉호는 혼자 있었으므로 벌떡 일어나 인사를 꾸벅 했지만 사장은 목례로 인사를 받을 뿐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함봉호는 순간적으로 사장이 자신의 얼굴을 한번 확인하려고 급습한 것임을 눈치 챘다. 굳이 사장이 아무도 없는 판매국 사무실을 점심시간에 혼자 올라온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장은 특별한 명령에 따라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놈이 어떤 친구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때까지도 함봉호는 은사 시인이 사장에게 직접 말했는지 아니면 제삼자가 전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근한 지 한 달이 안 됐는데 점심시간에 한 번 더 올라온 사실이다. 아무래도 함봉호를 적당한 자리에 빨리 보내지 않는 데 대한 항의 시위였을 법하다.

결국 함봉호는 판매국 사무실에서 쓸데없는 단순 업무만 하며 두 달 가깝게 근무하다가 12월 1일 사업국으로 발령을 받아 이전했다. 그런데 판매국에서 마지막으로 근무를 마친 그날 저녁 판매국장이 함봉호에게 퇴근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더니 중국집에서 팔보채 등의 푸짐한 음식과 소주를 시켜 함봉호에게 회식을 시켜 준 것이다.

게다가 함봉호가 새로 근무할 사업국의 국장까지 올라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판매국의 모든 잘못을 눈 감아 달라는 일종의 회유 자리인 셈이다. 그런 대로 술을 즐길 줄 아는 함봉호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술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는 술책이었다. 함봉호는 그날 적당히 많은 술을 마시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춰 주었다. 그래, 그가 당한 그 무시무시한 고통을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노라고….

마침내 함봉호는 사업국 출판부 소속이 되어 책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사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장은 원래 함봉호를 편집국 교열부로 발령을 내라고 했는데, 관리국장이 출판부장과 짜고 출판부 쪽이 더 적성에 맞는다며 보고해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아무튼 함봉호는 그나마 자신의 적성에 어느 정도 맞는 출판 일을 하면서 맡은 일에 두각을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대졸 학력자들만 일할 수 있는 부서에 근무하면서 애초부터 잘못된 월급 체계로 인해 고졸 임금을 받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도 함봉호가 은사에게 보고했더라면 중간에 사장이 조정을 해주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바보처럼 그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저 무작정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자동적으로 임금을 올려 주리라고 믿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얼간이 같은 함봉호였다.

애초부터 신문사에 입사할 때부터 확실하게 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그 또한 그 정도로나마 은사가 도와주었는데 더 이상의 혜택을 받기 위해 다시 부탁한다는 것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애초에 은사가 운영하는 출판사의 편집장을 마다하고 신문사를 택한 데 대한 위선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그의 불안한 신문사 직장 생활은 운명처럼 진행되어 갔다. <계속>

박하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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