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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14]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두 개의 장례식을 위한 발라드

기사승인 2017.01.23  00: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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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층부는 누가 가도 상층부를 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노예와 압제의 비참한 삶을 견디다 못해 모든 것을 버리고 에집트 땅을 떠나야했던 이스라엘 민족, 그들의 해방자로 나타나시는 하느님 등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피난민으로 고통스럽게 살아온 엄마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며 나를 흥분시켰다.

이 대로만 한다면 이제 가난으로 핍박받는 이 고통스런 삶의 굴레에서 해방 되어, 머지않아 민중이 주인이 되는 잘사는 세상이 도래할 것만 같았다.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느새 회장에 대한 미움도 다 잊고 이 한 몸 다 바쳐 열심히 해보겠다는 굳은 결의가 생겼다.

책의 뒤쪽의 부록에는 해방신학에 관한 주교단의 성명서와 훈령들이 실려 있었고, 해방신학을 비난하는 교황청 기사가 실린 조, 중, 동 신문 기사들이 복사되어 실려 있었다.

“하여튼, 이쪽 새끼들,.......”

나는 회장의 전라도 억양을 흉내 내며 읊조렸다.

다시 어금니를 악물고 운동권 지하단체에 몸을 담기로 결심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붙들려가 고문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어 좀 무섭기도 하고 겁도 났지만, 세상을 바꿀 수만 있다면야 싶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꿀 이유가 없다. 상층부는 누가 가도 상층부를 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동물농장>을 덮으며 쇼킹한 진리를 깨닫고도 왜 그렇게 순진한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그 당연한 진리를 부인하고 저항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들이 좀 솔직하기를 바랐다. 민중의 탈을 쓰고 속이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정원수이면서 풀인 척 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을 결코 밟히지 않는다. 나무를 어떻게 밟나 아무도 못 밟는다. 그저 올려다 볼 뿐이다. 풀이 스러지고, 밟혔다, 다시 일어서고 할 동안 나무는 오직 쑥쑥 자랄 뿐이었다. 위로, 위로, 저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간다.

나는 그때 반드시 작가가 되고 말겠다고 다짐 했다. 이 부조리를 까발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세계 또한 어마어마하고 꼭꼭 숨겨진 또 다른 부조리의 벽이 버티고 있었다. 그 안은 성공한 작가들,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회상을 떨쳐내고 신문을 다시 꼼꼼히 읽었다. ‘최분도’라는 사람이 단체장이 됐다는 것 말고는 더 이상의 정보를 알 수가 없었다. 나이가 몇인지도 나와 있지 않았다. 어쩌면 회장이 아닌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더 억지스러웠다.

그들을 미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속성인 것을. 그럼에도 미웠다. 아직까지도 화가 났다.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된 거였다. 나는 대중 계급일 뿐인데, 대중의 선동자들을 이끄는 상층계급 속으로 잘못 기어 들어간 거였다.

나는 신문을 다시 접어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접힌 면 위쪽의 한쪽 귀퉁이에 로또 번호가 보았다.

퍼뜩, 간밤에 오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맙다. 꼭 갚을게”

그랬지.

갑자기 그 말이 무슨 계시처럼 느껴졌다. 오빠가 내 인생에 대박을 안겨줄 지도 모른다. 은혜를 갚겠다면 결국 돈을 안겨주겠다는 것 아닐까.

아직 열차 시각은 30분 남짓 남아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복권 파는 곳을 찾았다.

“오빠, 제발 로또 대박 나게 해주세요.”

엄마의 주택복권이 떠올랐다. 엄마는 늘 주택복권을 샀다. 초등학생인 나에게 주택복권을 한 장 사오라고 시켰다.

그때는 미성년자고 뭐고 상관없이 부모님 술심부름 담배심부름도 하던 때였다.

나는 주택복권 사러가는 게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학교 앞에서 종종 뽑기 아저씨가 왔는데 뽑기를 하면 나는 늘 꽝!이다. 꽝을 당하고 나면 뽑기 한 게 왠지 창피해진다. 뭔가 바보짓을 한 것 같다. 연습 게임에서는 꼭 뭔가 당첨이 됐었다. 난 그 아저씨의 사기를 몰랐던 때라 그게 늘 신기했다.

“야, 당첨되면 1억이다.”

1억은 어린 내게 상상조차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일억만 되면 떡 하니 집하나 사서 주인 여편네 눈치 안보고 편하게 살 수 있다.”“그럼 밤샘 할 때 담요 안쳐도 돼요?”

“일억이 있는데, 바느질을 왜 하냐? 우리도 문간방이랑 이방 저방 세주고 또박또박 월세 받아 살아야지. 주인 노릇 좀 해보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 일억이 좀 큰돈인 줄 아나. 네 오빠 사업 뒷바라지도 해 주고, 매일 너랑 나랑 밥 안 먹고 소고기만 먹고 살아도 된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내 입은 함박꽃처럼 커졌다.

복권 당첨 날이면 엄마는 바느질 일손을 멈추고는 라디오를 켜놓고, 마치 간첩이 암호문을 듣는 것처럼 잔뜩 긴장해서는 라디오에 귀를 바짝 대고 온 정신을 집중해 어떤 숫자를 부르는지 귀를 기울였다.

2번!

엄마는 얼른 복권을 들여다보았다. 단 한 장의 복권을 놓고 숫자를 확인하는 엄마의 표정엔 금세 실망의 빛이 역력해졌다.

하지만 일말의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바느질감에 본을 그릴 때 쓰던 몽당연필을 쥐고는 준비해놓은 종이쪽지에 방금 전의 숫자를 꼭꼭 받아 적으며 다음 번호를 기다렸다. 마지막 숫자 한 개라도 맞춰서 복권 값이라도 건져야 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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