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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닭 테마콩트 제11화] 옥상에서 닭고기 소주파티

기사승인 2017.03.21  0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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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한 마리의 닭과 네 명의 노인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기호 아빠는 고향이 어디신가? 시골은 아닌 것 같은데.”

김 노인이 연탄불 석쇠에서 지글지글 익는 닭 양념구이 안주를 한 젓가락 집으며 물었다. 술 몇 잔에 얼굴이 벌그레했다. 네 노인 중 술을 제일 못 하는 김 노인은 취기만 오르면 습관적으로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어찌 옥상에서 닭 키울 생각을 했느냐고 또 물을 것이다.

옥상의 닭장에는 스물한 마리의 닭이 있었다. 지금은 열 마리 정도 남아 있다. 집 주위의 노인들이 토요일과 일요일 해 질 녘마다 한두 마리씩 잡아 술안주로 챙기면서 이제는 닭장이 허전할 만치 줄어들었다.

30여 평 가까이 되는 옥상은 작은 텃밭이었다. 수십 개의 사과 상자에는 상추, 쑥갓, 고추, 오이, 호박, 파, 토마토와 가지 등 먹거리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해마다 조금씩 채소 종류가 늘어나면서 네댓 명의 한 가정이 먹기에는 벅찰 만큼의 채소밭이 됐다. 자연히 채소를 이웃들에게 나눠주게 되고, 병아리가 큰 닭으로 크자 이웃 노인들의 안줏거리로 둔갑했다.

햇볕이 뜨거운 칠월 초 토요일 오후였다. 옥상의 채소들을 골고루 챙겼다. 대문이 나란히 있는, 아들 내외가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칠십 중반의 김 노인 부부에게 드릴 몫이었다. 할머니의 몸이 불편해 김 노인이 장 보는 것을 본 후 가끔 옥상의 채소와 함께 생선도 한두 마리씩 드리곤 했다. 그날도 상추와 쑥갓, 풋고추를 한 소쿠리 드리자 고맙다는 말끝에 한마디 덧붙였다.

“내 말 하지 않으려 했네만, 닭똥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이.”

“아! 예…….”

“늙은이가 이웃 간에 너무 각박하게 군다고 생각지 마시게. 견디고 견디다 하는 말이니 방법 좀 찾아보시게.”

김 노인이 말하지 않아도 늘 불안했던 일이었다. 스물한 마리의 닭이 쏟아놓는 배설물의 양과 그 냄새는 장난이 아니었다. 나와 아내가 부지런히 치웠지만 사실 한계가 있었다. 궂은 날에는 그 지독한 닭똥냄새가 우리 집은 물론 김 노인 집 마당으로 가라앉아 비위를 뒤집어놓았다.

김 노인의 방법 좀 찾아보라는 말의 의미는 간단했다. 인제 그만 닭을 치우라는 통보였다. 아무리 자기 집 옥상이라도 이웃에 피해까지 주며 닭을 키울 권리는 없다는, 김 노인의 점잖은 압력이었다. 아내에게 김 노인의 요구를 들려주자 난감한 표정이었다. 시장의 생닭 가게에 팔자고 하자 고개를 졌던 아내가 좋은 생각이 있다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아내는 김 노인과 함께 들어왔다.

“기호 아빠! 정말 허락한 건가? 나중에 딴소리 안 할 거지?”

무엇을 허락했다는 것인지 몰라 아내를 쳐다보았다.

“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기호 아빠가요. 술까지 준비한다고 약속했어요.”

김 노인은 젊은 사람이 마음 씀씀이가 참 넉넉하다고 칭찬한 후 돌아갔다. 아내도 내일을 기대하라며 생글생글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 그것은 옥상의 닭들에게는 맑은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일요일과 토요일마다 한두 마리씩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이봐. 영감들! 어때? 닭고기 맛 좋지?”

아내는 생닭 가게에 닭을 파는 것보다 이웃노인들에게 닭고기 주말 소주파티란 기막힌 해결책을 내놓았다. 김 노인도 아내의 제안에 대찬성이었다. 그렇게 죽이 착착 맞은 김 노인과 아내는 다음날인 일요일 해 질 녘에 첫 번째의 소주파티를 열었다. 김 노인까지 네 명의 어르신 앞에 닭 두 마리가 안주로 변신, 연탄불 화덕의 석쇠에서 지글지글 익었다. 그렇게 시작된 주말 닭 파티가 어느새 한 달을 넘겼다.

“기호 아빠! 고마우이.”

김 노인이 새삼스럽게 고맙다며 추억 하나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연탄불 화덕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세 분의 노인에게도 닭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씩 준비하라고 했다.

“어렸을 때 닭서리 안 한 사람 있나?”

김 노인의 말에 모두 허허 웃었다. 한순간에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돌아갔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암! 했지. 수박이나 참외는 서리도 아냐. 닭이 최고의 서리이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구동성에 김 노인이 잔마다 술을 채웠다.

“자! 한 잔 쭈욱 마셔.”

김 노인은 카 소리와 함께 술잔을 내려놓더니 “내가 말이야. 소실 적에…”라며 닭서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닭서리에도 원칙이 있었지. 알 낳는 암탉이나 장닭은 절대로 손대지 않았네. 서리는 도둑질이 아니라는 얘기야. 또 있네. 노인이 키우는 닭을 서리했다가는 마을 어르신들이 가만두지 않았네.”

마을의 친구들과 서리한 닭을 어떻게 먹는가 하면 말일세. 우리는 진흙 찜을 했어. 닭 내장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늙은 호박을 넣지. 그다음에 떡갈나무 잎으로 닭의 털 채 싼 후 그 위에 진흙을 두툼하게 발라 불에 굽지. 그 맛이 어떤지 아시나? 아마 기호 아빠는 상상이 안 될 걸세.

늙은 호박의 단맛이 밴 닭고기는 기름에 튀겨낸 치킨은 상대도 안 되네. 알싸한 흙냄새는 또 어떻고. 호박 향기와 흙냄새가 어우러진 닭고기, 지금도 침이 넘어가네.

김 노인의 말에 조 노인이 허허 웃었다.

“난 닭 속에 늙은 호박을 넣고 진흙 구이 한다는 얘기 처음 들어. 우리도 암탉이나 장닭은 손 안 댔어. 동네 닭도 손 안 댔고. 꼭 옆 동네로 원정 갔지. 그래야 스릴이 있거든.”

한 번은 닭 서리하다 잡혔어. 이웃 마을의 부잣집이었는데, 머슴에게 잡혔지 뭔가. 망보던 친구들은 다 도망갔지. 아무리 서리라지만 남의 닭을 몰래 훔치는 게 아닌가. 아이고! 이젠 죽었다 싶었는데 머슴이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야 인마! 주인영감이 오늘내일하는 집에 닭서리를 와? 온 식구가 벌겋게 눈 뜨고 있는데 닭을 훔쳐? 에라! 이 멍청이 놈!”

머슴이 쥐어박은 군밤이 어찌나 아프던지 눈물이 확 빠졌어. 목덜미를 움켜잡은 손아귀의 힘은 또 얼마나 강하던지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어. 이제는 죽었구나 싶어 울상을 있는 대로 지었지 뭐. 내 딴에는 최대한의 불쌍한 표정이었어. 그러나 머슴은 내 울상에는 관심조차 없었어. 오히려 더 호되게 군밤을 주더군.

“이놈 봐라. 끝까지 닭을 놓지 않네. 그 용기와 배짱이 가상해 내 특별히 봐준다. 냉큼 도망가.”

머슴도 어렸을 때 닭서리 한 경험이 있어 놔주었겠지만, 정말 꽁무니 빠지라 뛰었어. 도망가다 보니까 그때까지 닭을 쥐고 있더라고. 날 버리고 도망간 놈들이 그런 나를 보고 박장대소하는 거야. 그날 푹푹 삶은 닭다리 하나는 내 차지였지. 날개 한쪽도 더 먹고.

“그게 어제 같은데 육십 년이 다 됐어. 이젠 정말 옛날이야.”

조 노인이 세월 빠름을 탓하듯 잔을 단숨에 비우자 박 영감이 투덜거렸다.

“닭서리나 얘기하지 왜 세월을 걸고넘어져? 술맛 떨어지게.”

“그러게. 이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들이니 즐거운 얘기만 하자고.”

말이 없던 오 노인도 맞장구를 쳤다. 두 분의 핀잔에 혹 조 노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까, 조바심이 났는데 헛걱정이었다. 조 노인은 두 노인의 잔에 술을 채워주며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노인에게는 세월 흐름이 제일 무서운데, 그걸 깜빡했다며 큰소리로 웃었다.

“난 말이야.”

오 노인이 운을 뗀 후 술잔부터 비웠다. 이야기의 뜸을 들이듯 상추에 파와 닭고기를 얹어 입안 가득 물었다. 세 노인도 똑같이 잔을 비우고 닭고기 상추쌈을 쌌다. 술병이 비어 슬그머니 한 병을 더 꺼내자 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매번 고맙구먼. 고향 밭에서 술 마시는 것 같아 얼마나 좋은지 모르네.”

“나도 그럼세. 어쩔 수 없어 아들 집에서 살지만, 늘 논밭이 눈앞에 선하다네. 새참과 함께 마시던 막소주 생각도 나곤 했는데, 요즘 주말마다 기분 좋네.”

“이봐! 인사는 이런 자리를 만든 내게도 해야지. 왜 기호 아빠에게만 하는가? 안 그러신가? 기호 아빠!”

김 노인이 오늘의 마지막 안주라며 석쇠에 닭고기를 올렸다. 네 노인이 모두 술과 안주에 만족한 표정이었다. 옥상에 올린 전등에 불이 켜지자 날벌레들이 모여들었다. 어느덧 연탄불도 화력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오씨! 조금 전에 무슨 말인가 하려던 것 같은데.”

박 노인이 이야기 끈을 상기시켜 주자 오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난 말이야. 너무 약골이라 그런 추억이 없어. 다들 사람 구실 못할 거라고 그랬거든. 친구들과 참외 서리도 한 번 못해봤어.”

“그랬나? 그럼 우리 오 영감을 위해 닭서리여행 떠날까?”

박 노인의 말에 김 노인이 좋다고 손벽 치며 말머리를 내게로 돌렸다.

“저 닭들은 어디서 가져오셨나?”

“가져온 게 아니에요.”

“그럼 안방에서 부화시키셨나?”

“그것도 아닙니다.”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눈으로 묻는 김 노인에게 대문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쓰레기통을 가리켰다.

“저기 저 쓰레기통에서 가져왔어요.”

“그럼 그때 그 병아리들이 이놈들?”

김 노인이 웃음보를 터트렸다. 아내가 한 마리당 50원씩 사온 병아리에게 사람들이 먹는 마이신을 물에 타 먹인 건 김 노인이었다. 병아리들이 약에 취해 쓰러지자 모두 죽을 줄 알고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다. 다행히 밤늦은 귀가의 내게 약에서 깨어난 병아리가 발견되어 마루로 옮겨졌다. 두 개의 라면상자에서 십여 일 가까이 자란 병아리에게 옥상에다 닭장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 자란 닭들은 석쇠의 불판에 오르는 신세가 됐다. 노인들의 소주 안줏거리가 됐다.

오 노인이 닭장으로 가 남아 있는 닭을 헤아려보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구월까지 넉넉하니까 시월에 닭서리 가세.”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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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및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 문학 파란풍경 마을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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