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47

[노경민 푸념에세이 22화] 칼자국 덕에 잘 살아

기사승인 2017.03.22  02:04:33

공유
default_news_ad1

- 찢고, 꿰매고, 구멍 뚫었는데

[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최초의 상처는 일곱 살이었지 싶다.

옆집 사는 친구와 소꿉놀이하다 무언가 서로 붙잡고 실랑이하던 중 이마에 손톱자국을 냈다. 지금이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서 꿰매고 나면 흉터도 없으련만, 그때는 그 정도는 빨간 약만 바르면 끝이었다. 왼쪽 이마엔 한일(一) 자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를 가리려고 오른쪽 가르마를 타고 다녔다.

자라면서 상처의 흉터가 더욱 커졌지만, 한동안은 무탈하게 잘 지냈다.

20대엔 밤낮없이 주말이면 산에 오르건만 무르팍 하나 다치지 않았다. 결혼하여 아기 출산도 자연분만이었으나 드러나는 상처가 없었다.

옛 어른들이 몸에 함부로 칼 대는 것이 아니라는데 잘 지녀온 내 몸에 큰 상처를 낼 일이 생겼다.

오히려 무탈이 큰 변고의 잠재였던지 장기의 악성종양으로 복부 한가운데를 열고 제거작업에 들어갔다. 쓸개를 통째 들어내고 간도 절단하고 췌장이며 소장이며 림프샘도 자르고 잇고 하는 대공사를 벌렸다. 물론 가슴 사이와 배꼽 위까지 일자로 기다란 울퉁불퉁 상처가 남았다. 그야말로 쓸개 없는 년이 된 것도 함께이다.

외과수술 덕에 악성종양도 떼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싶었는데, 이번엔 쥐어짜듯이 배가 아프더니 충수염이란다.

아직도 내 뱃속에 떼어 낼 것이 남았던가 보다. 세 군데 구멍을 뚫어 맹장을 떼어내고 누운 병실의 천장은 높고 파랬다.

가벼워진 몸으로 퇴원하여 돌아온 집은 편안한 안식처였다.

“목욕탕도 가기 싫었거든. 모두 내 배만 보는 것 같아서. 이마 손톱자국도 싫어 가르마를 반대편으로 타고 다녔는데. 그래도 내가 낫지 싶은 건 친구는 어릴 때의 화상으로 발목부터 종아리까지 흉터가 컸어. 그래도 신경 안 쓰고 드러내놓고 다녔거든.”

찢고, 꿰매고, 구멍 뚫는 그 상처들로 가족들은 위기를 느꼈다. 서로를 더 챙기고 다독이며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을 잠시 돌아본다.

세상만사 욕망으로부터 나를 내려놓을 수 있게 해준 상처들은 오늘도 내 손끝에서 사랑받고 있다.

내 마음이 상처받지 않아 다행이다.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노경민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ad73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