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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 푸념에세이 31화] 연필로 다시 쓰고 싶은 인생

기사승인 2017.05.31  07: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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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만원짜리나 천원짜리나 시커먼 탄가루는 똑 같아

[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어느 가수가 불렀다.

그럼, 연필로 써야 지울 수 있잖은가.

잉크 찍어 쓰던 만년필도 번거로워 볼펜으로 대체하고, 깎아 쓰던 연필도 불편하다고 샤프가 나왔다. 물론 샤프 뒤엔 지우개도 달렸다.

연필의 최대 장점은 지우개다.

쓰고 지우고 또 그 위에 다시 쓰고 다시 지우고, 연필도 지우개도 닳아 점점 작아진다. 적어진 연필은 다 쓴 볼펜 통에 끼워 쓰기도 한다. 지우개 따 먹기 게임도 책상 위에서 종종 치러졌다.

우리 인생도 그렇게 지우고 또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 더 생각하고 다시 이야기하고, 이야기한 거 지우고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펜은 서명할 때처럼 마무리 단계에서 주로 쓰이고, 연필은 아이디어를 시작하거나 낙서로도 좋다. 누런 갱지에 끄적끄적 쓰던 글을 고치고 또 고쳐서 완성되었다 싶을 때 원고지에 펜으로 마무리하는 것 또한 연필만이 할 수 있다.

떠오르지 않는 생각들은 도루코 면도날 칼을 꺼내들고 나뭇결 따라 연필을 깎으면서 정리하기도 한다. 깎을수록 점점 드러나는 까만 연필심이 눈동자처럼 빛난다.

필기구도 많은 변화를 겪어 색색의 볼펜에 형광펜에 네임펜에 열거하기도 버거웁게 문구점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데, 다시 연필이 돌아왔단다.

아직도 연필을 즐겨 쓰는 나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반갑기는 한데 용도가 달라졌다. 그 연필이 콜렉션으로 자리한단다. 뭔 연필에 백금도금까지 해서 30만 원대라니, 그 연필을 손에 쥐고 쓰면 백금이 종이 위에서 춤을 출까? 아니 로또번호라도 맞추어 줄까?

한 타스 12자루를 100원도 주지 않던 연필이 이제 한 자루 최소 1,400원이다. 천원짜리 연필심에서나 30만 원짜리 연필심에서나 시커먼 탄가루는 똑 같은 거, 아시나요?

그런데, 우리 인생은 다르잖아…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노경민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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