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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29]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두 개의 장례식을 위한 발라드

기사승인 2017.06.28  07: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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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상중에 웃어도 돼?

[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귀신일 줄 알았겠다.'

"시어무이가 시껍했겠다 아이가, 그래도 할마시다 보이까 젊은 사람하고 달리 지혜가 있어서, 정신을 '차리고는 문고리를 풀고는 귀신이면 썩 돌아가고 사람이면 들어 온나.' 그랬다. 그랬더니 문을 스르르 밀고 들어오는 기라."

"야, 그 서방이 더 놀랬겠다. 마누라 죽었다고 새장가 들 생각에 좋아 했다가 웬 날벼락이고."

오빠까지 농지거리에 가세했다.

"지랄한다. 서방이 다 당신 같은 줄 아나"

조카들과 오빠가 웃으며 떠들고 야단들을 했다.

보다 못해 내가 한소리 했다.

“오빠 상중에 웃어도 돼?

엄마가 괘씸해서 벌떡 일어날 거 같았다.

“그 정도 사셨으면 호상이다. 웃어도 된다.”

오빠가 그랬다.

“그래, 일흔이면 딱 맞게 깨끗이 갔다. 호상이다.”

올케가 거들었다.

‘호상?’

그 말이 상당히 거북했다. 호상이라면 좋을 好와 죽을 喪인데,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호상이라니. 그것은 잘 먹고 잘살며 호강하다 제 명까지 꽉 채워 더 이상 원도 없이 살다 갔을 때 하는 소리다. 오래 살았다고 다 호상은 아닌 거다. 게다가 엄마는 아직 일흔이었다.

평생 홀로 자식 뒷바라지만 하던 엄마였다. 북에 두고 온 부모 형제를 한처럼 가슴에 담고 사셨다. 통일이 되면 우리가 찾을 땅이 희망처럼 기다렸고, 날마다 주택복권에 희망을 걸며 사셨다. 마지막 날까지도 아들 걱정뿐이었다. 가난을 마주하는 게 저승사자 마주하기보다 무섭다고 했다. 남한에는 묘소 만들지 말고 뿌리라고 했다. 그런데 좋을 호라니.

"아빠, 할머니 천국에 가셨을까? 설마 지옥에 안 가셨겠지?"

친구를 따라 교회에 들랑거리던 막내 조카가 좀 근심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좋은 데 가셨을 거다."

"하이고! 죽어봤나? 우예 아노? 내한테 군 거보면 지옥에 가고도 남는다. 어무이한테는 지옥 천당이 없는 게 낫다."

오빠가 올케를 째려보았다.

"지옥 갔다는 게 아니고 말이 그렇다 소리다. 지옥이 어딨노? 말이 되는 소리가?"

엄마는 천지신명을 비롯하여 무교, 불교, 기독교, 대순진리교, 천주교까지지 다 두루 조금씩 맛 배기로 섭렵하며 여러 종교들을 돌아다녔다. 그러니 천국을 가게 될지 극락왕생을 할지 아니면 옥황상제님이 계신 하늘로 돌아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동물과 새 사이필요에 따라 왔다 갔다 하던 박쥐처럼, 배신자로 찍혀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쫓겨날 수도 있다.

항아리 뚜껑 위에, 때로는 소반 위에 냉수를 떠놓고 하늘에 뭔가를 빌던 모습은 어릴 때 보았던 모습이다. 수돗가 마당 한 가운데 펌프가 있었다. 엄마는 새벽이면 일어나서 먼저 마당으로 갔다. 가끔 나는 자다 깨서 방문을 배꼼이 열고 엄마를 훔쳐보았다. 콘크리트 물받이 통에서 물을 떠서 세수를 하고 들어오며, 물 묻은 손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쓱쓱 쓸어 올렸다. 그런 다음 다시 마당으로 나가 수돗물을 틀어 대신 펌프에 마중물을 넣고 물을 뽑아 올렸다. 펌프질로 한참동안 물을 뽑아버린 뒤, 땅 저 깊은 지하세계의 물까지 올라올 것 같을 때쯤 해서 바가지에 물을 받았다. 한 번, 두 번을 헹구어 내고 세 번째 채워진 물을 들고 부엌으로 가서 하얀 사발에 그 물을 담았다. 그걸 들고 마당의 광 옆에 붙은 계단을 올라 장독대로 올라갔다. 두 손을 싹싹 비비며 하늘에 대고 아들을 위해 비는 것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벽에 걸린 소반을 내려 부뚜막에 올려놓고 그 위에 물그릇을 놓고서 기도 했다.

하루는 엄마가 날 깨웠다.

“엄마 하는 거 봤지. 흰 사발에 물 좀 받아다 부엌 소반 위에 좀 올려놔라. 100일 기도라 빠지면 안 된다.”

엄마는 어디가 아픈지 못 일어났다.

나는 춥고 귀찮아서 사발을 들고 마당 물받이 통에서 물을 푹 퍼서는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물이 출렁거려 만은 쏟아졌다. 방문을 열고 내다보던 엄마가 맨발로 뛰어나와 내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그 바람에 그릇을 놓쳐 산산이 박살이 나버렸다. 파편 조각 하나가 튀어서 내 발목에 날아와 박혔다. 피가 줄줄 흘렀다. 엄마가 재봉틀 서랍에서 붕대랑 갑오징어 뼈 가루를 꺼내 지혈을 해주면서 계속 뭐라 했다.

"재수 없게 아침부터 이 무슨 사단이냐. 묵은 물을 떠가니 부정이 타서 그렇잖아. 눈 설미가 그리도 없냐? 펌프 물 받는 거 만 날 보고도 몰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때 다친 흉이 아직도 보인다.

기억대로라면 엄마가 원래 믿었던 건 민간신앙이다. 그런데 그 후 이사 간 집에서 절에 다니는 집주인 아주머니랑 친하게 지내더니 느닷없이 절을 다니기 시작했다. 일이 없어 한가할 때면 절에 가서 하룻밤 자고도 왔고, 바쁠 때는 장롱 이불 아래쪽에 끼워 감춰둔 소액 지폐 몇 장을 꺼내서 주인아주머니 편에 시주를 부탁하기도 했다.

"돈이 적어 낯부끄럽겠지만 우리 아들 이름으로 좀 올려 주소"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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