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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의 문화 단상] 광견(狂狷)이야기, 세속과 타협 않는 광자 행보

기사승인 2017.10.24  17: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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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곽 밖 처사처럼 꼬리 내리고 논란에서 도망쳐야...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니스트] 가을이 무르익고 풍경은 하루가 다르게 옷을 갈아입습니다. 곱게 물든 단풍이 거리의 풍치를 더하고 산색은 마치 수를 놓은 듯 화려합니다. 날마다 소풍가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오늘은 다소 생소한 광견(狂狷)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논어』의 「자로」편에서 공자는 두 가지 상반된 인물유형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유형은 광자(狂者)인데, 자유분방한 인물이며 공자는 진취적이라고 평했습니다. 비록 허풍이 세고 세상 예속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영혼이지만 발전가능성을 높이 샀습니다. 두 번째 유형은 견자(狷者)인데, 고루한 인물로 답답하긴 하지만 행실을 자제해서 적어도 실수할 확률이 적다고 봤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논어에서 산속의 나무꾼이나 나루터의 뱃사공과 같이 강호(江湖)에 은거하며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려 동분서주하는 공자를 비웃는 인물들이 대부분 광자에 속합니다.

며칠 전 가수 조영남의 그림 대작(代作)논란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있었습니다. 비록 1심판결이지만 조영남이 작품구매자들을 속일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며 사기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평소 세속 기준을 일탈하는 언행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안타까운 일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드물게 TV를 보유한 친척집에서 가수 조영남을 처음 보았습니다. 번언가요 ‘딜리일라’를 불렀는데 상체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나와 심지어 드러누워 열창했습니다. 어린 눈에도 파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필자가 중학생 때 배우 윤여정과 결혼해 미국의 신학대학에 유학 간다며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고별공연을 해놓고선 해마다 귀국공연을 해서 조영남이 미국에서 돈 떨어지면 한국에 온다고 쑥떡거릴 즈음에 바람 펴서 이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얼마 가지 않아 아주 어린 신부와 재혼했다는 기사가 주간지 가판대에 떴습니다.

유학시절 한국에서 보내온 TV녹화테이프로 자니윤쇼 보조MC 조영남을 자주 봤습니다. 어눌하고 두서가 없는데도 좌충우돌 언행에 재기가 넘쳤고, 무엇보다도 철들고 들은 그의 노래솜씨는 일품이었습니다. 가끔 KBS 열린음악회에서 선보이는 가창력과 청중을 휘어잡는 무대 위 열정은 노래에 관한 한 조영남의 천재성을 확인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화개장터’ 외에 내세울만한 히트곡 없이도 정상가수의 자리를 오래 지켜온 점도 경이롭습니다.

어눌한 그가 라디오진행을 맡아서도 매일 아슬아슬한 수위를 넘나들며 비교적 장수하였고, 덕분에 파트너였던 최유라는 매일 간을 졸였을 것입니다. 도중에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친일선언』이란 책을 내고 노이즈마케팅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진짜 맞아죽을 뻔했고, 한때 가짜학위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신정아를 문화계에 큰 공을 세웠다고 두둔을 해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화투화가 조영남이란 명함이 그의 광자 행보를 가름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는데 이제 그림대작이 문제되면서 화가로서도 명예에 큰 금이 갔습니다.

이처럼 조영남은 가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예술가로서도 기행과 논란으로 점철해왔습니다. 공자가 말한 광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칠 광(狂)자가 들어가니 실례될 표현일 수 있지만 중국예술사를 살펴보면 세속과 타협하지 않은 창의적인 예술가를 ‘광’자로 형용합니다. 예를 들어 성당(盛唐)시대 천재시인 이백(李白)의 일탈 언행을 ‘광방(狂放)’’하다라고 표현해도 아무도 그를 미쳤다고 보진 않습니다.

천재라고 해서 반칙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창작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이며 조수의 역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는 회화는 물론이고 예술계 전반의 해묵은 논쟁거리인 것은 사실입니다. 논쟁사안을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핑계로 일관하거나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념은 고루하기에 여론재판으로 매장하기 딱 좋은 상황”이라며 예술에 대한 사회통념의 미성숙을 나무라는 이른바 전문가의 법정증언 뒤에 숨는다면 이 시대의 고루한 견자들은 더욱 화가 납니다.

중국 전국시대에 제나라의 선왕이 피리소리를 좋아해서 연주자 삼백 명을 모아 합주단을 구성했습니다. 도성 밖의 한 처사가 피리를 불 줄도 모르면서 합주단에 들어가 피리를 부는 시늉만 하면서 다른 수백 명 악공들과 같은 봉록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선왕이 죽고 그의 아들 혼왕이 즉위했는데, 혼왕이 일일이 독주하는 소리를 듣기를 좋아하자 처사는 그길로 도망을 쳤습니다. 『한비자』의 「내저설상(內儲說上)」에 실린 이야기로, 군왕이 현장의 소리를 일일이 듣고 점검해야한다는 뜻에서 일청(一聽)이라고 부릅니다.

조영남의 화투그림 대작논란은 지금 사회적인 일청에 걸린 형국입니다. 한 세대를 풍미한 가객(歌客)이 예술 사기꾼으로 전락하기 직전입니다. 노래말고도 회화에도 일가를 이룬 문화아이콘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이제와 예술적 하청을 관행이라고 운운하면 늘그막에 사람이 치사해 보입니다. 성곽 밖 처사처럼 꼬리를 내리고 하루빨리 논란에서 도망쳐야 합니다. 시원스레 세상을 속인 것을 사과하는 것 또한 광자다운 반전입니다.

올 가을에는 세상에 묻어가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 화가의 땀과 작가정신이 물씬 배어있는 미술전시회를 찾아 한 번 관람하시길 권면합니다. 예술은 아이디어 천재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직하게 예술의 고전적인 원칙을 고수하며 힘들게 작업하는 견자의 작품 중에도 걸작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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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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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 본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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