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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스타톡톡] 신춘문예 당선작 ‘태엽’으로 ‘소리 찾기’ 나선 연출가 주성근

기사승인 2018.02.06  08: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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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소리, 거꾸로 가는 세월 여행에서 잊힌 과거를 탐하다

숨기고 싶은 시간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슬픔이 우리의 삶에 섞여 있다는 것을 찾아가 보고 싶다...인기척 ‘소리’다

[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누구나 한번쯤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과거로의 회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영화 ‘빽 투 더 퓨처’나 TV드라마 ‘명불허전’ 같은 ‘타임 슬립’(time slip,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을 거슬러 과거 또는 미래에 떨어지는 일)류의 판타지나 SF 작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난 세월을 그리워할 뿐이다.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가는 시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세월을 되돌려 ‘그때 그것들’을 만나고 싶어서이다. 시간이 거꾸로 가면 ‘그것들’을 만날 수 있을까. 과거에 연연하는 모양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나타난다.

전통, 풍습, 놀이는 물론 우체통, 공중전화, 빨래판, 숯불다리미 같은 일상용품도 그리워한다. 무엇보다 ‘잊혀진 소리’가 그립다. 과거를 상기시키는 촉매제로 ‘소리’만한 소재가 있을까.

어머니와 누이의 한이 담긴 다듬이 방망이 소리,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에서, 겨울철이면 들려오던 “찹쌀떡 사려~ 메밀묵~”, 기차 타면 생각나는 “삶은 계란 왔어요~ 사이다!”, 골목을 울리던 “칼~갈아요 구멍난 냄비 때워요” 같은 소리들. 그리고 “금이나 은이나 ~ 머리카락 팔아요~ 고장난 시계 팔아요~”처럼 판다는 건지 산다는 건지, 애매하게 들리던 소리들, 모두가 잊힌 소리들이다. 이 소리들이 사람들은 그립다.

잊혀진 소리가 그리운 한 연극인이 세월 여행을 떠난다. 대학로 소극장 ‘스튜디오 76’의 주성근 대표가 연출을 맡아 ‘고장난 시계’에 ‘태엽’을 조이는 작업에 나선다. 연극 ‘태엽’은 오는 2월 9일부터 3월 4일까지 ‘스튜디오 76’무대에 오른다.

‘태엽’(胎葉)은 얇고 가는 띠 모양의 탄성이 좋은 금속판을 달팽이처럼 나선형으로 만든 스프링으로 나선형 스프링이라고도 한다. 감았을 때 금속판이 가지는 탄성 에너지를 축적하게 되고 원래의 상태로 풀리려는 힘을 동력으로 이용한다. 고탄소강이나 코발트 합금 등이 재료로 쓰인다.

‘태엽시계’는 지금은 보기가 힘들다. 실생활에 쓰이지는 않고, 시계 전문점에서 장식용으로 판매된다. 과거에는 손목시계나 거실 큰 시계(시계추가 있는 것)등은 모두 태엽을 감아주어 태엽이 풀리는 힘을 동력으로 하여 시계의 분침과 시침 등이 움직였는데, 이렇게 태엽을 감아야 시계가 작동하는 시계를 태엽시계라 부른다. 원조 아날로그시계라 할 수 있다. 골목을 누비던 고물장사가 ‘고장난 시계’를 매입해 가장 먼저 손보는 부분이 바로 이 ‘태엽’이다.

시계 기술자들은 망가진 시계를 수리하고 태엽을 감아 ‘재깍 재깍’ 초침과 분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 “생명을 되찾았다”며 기뻐했다. 이 시계소리도 지금은 ‘잊힌 소리’임에 틀림없다. ‘잊힌 소리’를 되살리는 일은 바로 새 생명을 찾는 작업과 같다.

연극 ‘태엽’은 김경주 작가의 지난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을 원작으로 한다. 당시 당선작 심사를 맡았던 김철리, 배삼식 심사위원은 이 작품을 “시계 수리공의 일과 삶을 통해 부서진 삶을 복원하고자 하는 갈망을 사실적이면서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라고 심사평을 남겼다.

주성근 연출은 ‘태엽’을 어떤 모습으로 무대에서 형상화할까. 그는 연출노트에서 “숨기고 싶은 시간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슬픔이 우리의 삶에 섞여 있다는 것을 찾아가 보고 싶다.”고 밝히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디든 존재할 테니까”라고 여운을 남겼다. 그의 ‘태엽’에서 나는 ‘재깍 재깍’ 소리는 ‘잃어버린 소리’가 아니라 ‘잊힌 소리’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연극 ‘태엽’의 무대는 중견과 신인 연기자가 마치 아날로그와 디지털시계를 대표하듯 시간 여행을 함께 떠난다. 김귀선, 이하나, 오현철, 이계영, 박채익, 유소라 등 탄탄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이 주성근 연출을 앞세워 ‘소리 찾기’에 나선다. 시놉시스에서 ‘태엽’은 이렇게 속삭인다.

“시계 속에서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해? 인기척이야. 인기척을 만드는 일을 하는 거야”. 그렇다. ‘인기척’은 ‘소리’이다.

윤상길 컬럼니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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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윤상길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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