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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4千字 소설 제18화] 오라버니와 명혜

기사승인 2018.04.05  08: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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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탕 사준다는 꾐에 졸졸 따라가요?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떡살 무늬가 참 예뻐요.”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나무 함지박에 가득 담긴 떡살마다 유심히 살펴보던 명혜가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놈을 집어 들었다. 국화와 벌 무늬가 양쪽에 각각 음각된 떡살을 건네주며 말했다.

제법 세월이 느껴진 떡살의 냄새부터 맡았으나 고소한 참기름 향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하얀 인절미에 살짝 참기름을 바르고 떡살로 꾹꾹 누르면 국화떡도 되고 잉어떡도 됐던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어머니는 음식으로 장난치면 안 된다고 눈을 흘기면서도 내버려 뒀었다.

“떡살 찍기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떡살로 손바닥을 꾹꾹 누르자 명혜가 쿡쿡 웃었다.

“그렇게 힘주면 떡이 뭉개져요. 이렇게 살짝 눌러야지.”

떡살을 빼앗은 명혜가 내 볼에다 살짝 누르더니 함지박에 내려놓았다. 그 옆의 숯불 다리미에 얹혀 있던 인두를 집어 들고 호호 불었다. 인두의 뜨거움을 확인하는 동작을 천연덕스럽게 하더니 저고리의 동정 다리는 흉내를 냈다.

눈이 어두워 돋보기를 쓴 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느질과 다리미질을 했다. 아버지의 한복 때문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일손을 놓은 아버지는 한복만 고집했다. 매일매일 그 입성 뒷바라지는 한복 저고리의 동정을 인두로 꼼꼼히 다려야 끝났다.

“한복 지을 줄 알아?”

“왜요? 인두를 보니까 어머니 생각이 나세요?”

“아버지도 생각나. 늘 한복을 입으셨으니까.”

“우리 아버지도요. 잠깐만요! 그러니까 한복 지을 줄 아느냐고 물은 건…….”

명혜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그녀는 바느질은 여학교 시절 숙제로 자수 놓아본 게 전부라며 단추 하나 제대로 달지 못해서 번번이 수선집 신세라며 팔짱을 꼈다. 전통보자기에 관심이 많아 배우다가 포기했는데 그 이유가 바느질 때문이라고 했다. 조각조각 천을 이어 만드는 보자기이지만, 재봉틀로도 가능한데 그것조차 실패했다며 짐짓 울상을 지었다.

“생활한복 입으실래요?”

대답하지 않고 다음 점포로 자리를 옮겼다.

“왜요? 생활한복이 싫으세요?”

팔짱 낀 팔에 힘을 주며 흔드는 그녀 표정은 지금 당장 동대문시장의 생활한복 집으로 갈 것 같았다. 섣불리 대답했다가는 꼼짝없이 끌려갈 판이라 재빨리 둘러쳤다.

“좋지. 명혜가 손수 만들어주면 입고 말고.”

“또 억지 부리신다. 가요! 저쪽으로.”

명혜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엉뚱하게도 대패와 먹줄이 없는 먹통이었다. 두 가지 다 목수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집 짓는 도구였다. 대패는 흔한 물건이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먹통까지 이름과 사용방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줄 몰랐다.

“저, 이거 집에 있어요.”

“먹통을 가지고 있다고?”

“예! 이거보다 조금 커요.”

먹통을 손 뺌으로 길이를 재더니 손가락 한 마디만큼 크다고 했다.

명혜는 부잣집의 외손녀였다. 그녀의 외가와 우리 집은 가까웠지만, 왕래가 없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50여 년이 지난 어느 모임에서 그녀의 외가 옆에 있었던 교회와 빨래터를 이야기하다가 같은 마을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까이 지내게 됐다. 그녀가 십여 년 이상 아래라 만나면 동생과 오빠처럼 스스럼없었다.

“먹줄까지 있으면 좋은데…….”

먹줄은 명주실을 여러 겹으로 꼬아 사용했는데 집에 있는 먹통에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명주실 대신에 검은색 뜨개실을 감아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 눈을 흘겼다.

“눈 감고 아웅 해요?”

“솜도 넣고, 먹물도 붓고.”

“이거 사드릴 테니 그렇게 하실래요?”

후후 웃으며 자리를 뜨자 도망가는 사람 잡듯 재빨리 팔짱부터 꼈다.

서울에서 외할머니 집에 오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먹통 줄 튕기기였다. 그때 널빤지를 잡아주면서 함께 놀아준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먹물 줄이 어지럽게 쳐진 널빤지를 대패질로 말끔하게 벗겨놓곤 했다. 땅바닥에 수복하게 떨어진, 돌돌 말린 대팻밥을 하나씩 펴며 예쁜 무늬 밥만 골라 작은 바구니에 담던 그때가 그립다고 했다.

“도깨비시장이니까 목공소도 있겠지.”

“거긴 왜요?”

“명혜에게 대팻밥 구해주려고. 그 시절로 돌아가게.”

이번에는 그녀가 후후 웃었다.

“됐어요. 이 나이에 대팻밥 놀이라니 말도 안 돼요.”

“난 말 되는데.”

“그럼 오라버니는 자치기 하며 놀 수 있어요?”

“얼마든지! 제기차기도 하고, 땅뺏기도 하고, 또 뭐가 있지?”

머리 하얀 노인이 그렇게 놀면 노망들었다고 해요, 라는 그녀 핀잔이 서운하게 들렸다. 농담인 줄 알면서도 섭섭한 감정에 한숨까지 쉬다니 참 속 좁다 싶어 허허 웃었다.

“웃음소리가 왜 그래요? 노망이라는 말이 서운하세요?

“서운하다마다. 아직 청춘인데.”

“알았어요. 그 말 취소할게요. 됐죠?”

명혜의 미소에 가슴을 펴며 고개를 길게 뺐다. 점심으로 메밀국수를 먹었는데 그새 꺼졌는지 시장기가 돌았다. 저녁을 먹기에는 한참 이른 시각이라 간단히 요기할 요량으로 김치전 포장마차를 기웃거리자 명혜가 가로막았다.

“가요. 큰 도로 건너편으로요.”

김치전이 맛있어 보인다고 하자 먼지 속 음식이라며 팔을 잡아당겼다. 도깨비시장을 빠져나와 동묘지하철역으로 건너갔다. 건널목을 건너며 명혜가 가리키는 간판을 쳐다보았다. 아직도 서울의 대로변에 판잣집이 있나 싶을 만큼 낡고 허름한 빵집이었지만, 종로찐빵이란 글자만 덩그러니 걸린 간판에 왠지 정감이 갔다.

빵집 앞으로 갔지만, 들어가는 출입문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옆집 잔치국수 집을 통해 들어가나 싶어 살펴보았으나 아니었다. 빵집 앞 그리 크지 않은 솥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만져보니 두 개 중 하나만 뜨거웠다. 닫힌 판매 창구를 두드렸으나 대답이 없었다.

“정말 희한한 찐빵집이네요. 출입문도 안 보이고, 주인장도 없고.”

명혜도 매우 아쉬운지 한 번 더 창구를 두드렸다가 돌아섰다. 동대문 쪽으로 걸어가며 요기할 만한 곳을 찾았으나 마땅한 음식 공간이 없었다. 큰 음식점 아니면 떡볶이 등 수십 가지의 메뉴가 붙은 분식점뿐이었다.

사람들에게 가로막힐 때마다 멈춰 섰다. 정말 많은 인파였다. 밀려가고 밀려오는 인파 속에 갇혀 주춤거리면서도 용케 앞으로 걸어갔다.

“시골로 내려가면 유유자적할 수 있는데.”

명혜가 피식 웃었다.

“논둑을 걸으면 가슴이 탁 터지는데.”

명혜가 머리로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가로챘다.

“텃밭에서 상추와 쑥갓을 뜯었다가 쌈 싸 먹고, 저녁이면 마당에 멍석 깔고 쑥불로 모기를 쫓으며 별 하나 나 하나 헤아리자, 그 말 또 하고 싶으시죠?”

“잘 아네. 이젠 세뇌됐을 만도 한데…….”

“언제까지 시골 풍경으로 유혹할 건대요?”

짓궂은 질문에 대답보다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 웃음 뒤에 숨은 거 알아맞혀 볼까요?”

“허허 내 참!”

“왜요? 민망하세요?”

빤히 쳐다보는 명혜의 눈길에 걸음을 조금 빨리 했다.

“늙은 사람이 주책이다 싶고요. 그렇죠?”

정말 주책없는 늙은이로 보이는 것 같아 민망했다. 그러나 시치미 뚝 떼고 도깨비시장에서 그녀가 특별히 관심 보인 먹통과 대패를 가지고 놀 수 있는 놀이공방도 만들자고 했다.

“오라버니! 어쩌죠? 사탕 준다. 장난감 사준다는 꾐에 졸졸 따라갈 아이가 아닌데.”

소녀처럼 킥킥거리는 명혜가 팔짱 낀 팔에 힘을 주었다. 멈추려는 걸음을 잡아당겼다. 그 힘에 이끌리어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었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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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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