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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4千字소설 제25화] 북경의 위홍

기사승인 2018.05.24  09: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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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 눈은 금방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결혼의 포기 이유가 너무나 황당했다.

그녀, 위홍을 소개받은 것은 조선족 도우미의 남편으로부터였다. 그에 따르면 위홍은 김일성대학을 나왔으며, 한국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고 했다. 그녀가 근무하는 곳이 기업체의 수출업무를 관장하는 정부 기관이라 귀가 솔깃했다.

“이번 토요일에 낚시하기로 했어요. 시간 되시죠?”

조선족 남편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십 분 거리의 인공호수로 약속장소를 잡았다. 여자가 무슨 낚시? 당시 중국이 개방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체제는 여전히 사회주의였다. 지난날보다 많이 자유스러워졌다고 하지만, 낚시까지는 아니었다. 여자들이 아침저녁으로 공원에서 즐기는 것은 중국식 건강댄스였다.

“그 여자, 정말 낚시 좋아해요?”

“암요! 낚시라면 맥을 못 쳐요.”

“그래? 그럼 한국말은?

“김일성대학을 나온 여자예요.”

북쪽의 김일성대학을 나왔다는 게 마음에 걸렀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라 싶었다. 사실 그녀를 통해 북쪽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호기심도 있었다. 북경에서 조선족 식당을 다니다 보면 북쪽 사람들과 술도 한 잔씩 하지만, 누구도 서로의 조국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쓸데없는 잡담만 늘어놓다가 헤어졌다.

위홍은 한족이었다. 훤칠한 키에 긴 머리가 검은 눈동자와 함께 아주 유혹적인 여자였다. 그녀는 낚시할 줄 몰랐다. 청하대학 앞에서 짠지장사 하던 조선족 도우미 남편이 그녀를 내게 소개하기 위해 낚시를 할 줄 안다고 거짓말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한국에서 가져간 여러 대의 낚싯대에서 그녀 몫도 챙겼다. 그날 우리는 낚시를 하긴 했지만, 건성이었다.

“한국 남자는 여자에게 친절한 것 같아요.”

그녀의 말뜻을 몰라 쳐다보자 낚싯대를 가리켰다.

“실장님처럼 처음 만나는 여자를 위해 낚싯대까지 가져올 남자는 중국엔 없어요.”

“설마요! 중국 남자들은 부엌일도 잘하잖아요. 한국 남자는 절대 안 해요.”

그녀를 만나러 나온 것은 수출 관련 기관에 근무한다니 업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녀 몫의 낚싯대를 가져온 것도 호감을 사기 위해서였다. 상황에 따라서는 아예 선물할 생각이었다. 중국인들은 한국의 낚시 장비를 워낙 좋아해 공공연한 뇌물로 건네졌다.

한참 동안 대화가 끊겼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어느 순간에 마치 까맣게 잊었던 이야기가 생각난 듯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결혼했어요?”

그녀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호수의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다가 갑자기 미안하다고 했다.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무엇이 그렇게 미안하냐고 물으면 그냥 소리 없이 웃었다. 그녀의 미안하다는 말과 소리 없이 웃는 미소에 빠르게 빠져들었다. 김일성대학에서 조선어학을 공부한 그녀의 발음은 묘한 매력이 숨어 있었다. 발음이 어색한 듯싶으면서도 살며시 감겨오는 가을바람 같았다. 어쩌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때의 발음도 뭐랄까? 내게는 애교로 들렸다.

주말마다 그녀의 안내로 북경의 곳곳을 다시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북경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대해 놀라우리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한국 관광객이 보는 자금성은 건물의 껍질뿐이라고 했다. 진짜 보물은 자금성 건물의 앞쪽이 아니라 뒤쪽의 방에 있다고 했다. 그것을 다 보려면 삼 년쯤 걸린다고 했다. 어쩌면 그 보다 훨씬 더 걸릴 수 있다며 웃는 위홍은 한국 드라마 속의 남자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연속극을 보면 한국 남자들은 연애 박사던데……실장님은 아니죠?”

“연애 박사? 맞아요. 지금 이렇게 연애하고 있잖아요.”

“미안해요. 내가 잘못 말했어요. 그걸 뭐라고 하더라?”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웃었다.

“바람! 바람피운다고 해요.”

위홍은 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와 데이트하는 걸 바람으로 표현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바람은 이 꽃 저 꽃 휘감고 다니는 게 아니냐며, 남자가 지나가는 여자에게 눈길만 돌려도 바람피우는 거냐고 물었다.

그녀와의 농담이 편해지면서 업무의 협조도 발 빠르게 이뤄졌다. 그녀는 만만디가 아니었다. 빠른 업무가 과업의 큰 성과를 가져온다며 늘 기대 이상이었다.

중국에서는 모든 생산업체가 수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게 아니었다. 수출하기 위해서는 진출권이 있어야 했다. 위홍이 근무하는 곳이 바로 진출권 허가업무를 담당한 정부 기관이었다. 그녀의 사전 정보로 생산업체의 접근과 계약이 수월해졌다. 진출권이 없어도 그녀의 도움으로 한국의 수입업자가 원하는 물건을 싼값에 공급할 수 있었다.

“미안해요. 더 좋은 물건을 더 싸게 수입할 수 있게 도와야 하는데.”

그녀는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어쩌다 제날짜에 선적 못한 중국 회사가 있으면 사람을 보내어 책임 추궁까지 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 고집은 바로 나에 대한 사랑의 표시였다. 어머니와 둘이 사는 아파트에 초대한 그녀는 아예 결혼할 남자로 대했다. 나 역시 그녀가 좋았다.

“어머니가 걱정되나 봐요?”

“무슨 걱정?”

알면서도 딴청 하자 그녀가 눈을 흘겼다.

“여름휴가 때 서울에 가면 안 돼요?”

“우리 집에 가고 싶어?”

“미안해요.”

“또 뭐가 미안한데요?”

“제가 너무 보채지요? 그렇죠?”

위홍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촉촉이 젖은 눈은 금방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그녀의 두 어깨를 살며시 감싸며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녀가 제가 너무 보채지요, 물을 때 가슴이 아려왔다. 알 수 없는 슬픔도 잔잔하게 밀려왔다. 그녀가 내게 늘 말하는 것처럼 정말 미안했다.

“그래. 가자. 서울 집에 다녀오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어머니도 함께 가자.”

그녀는 눈을 감았다. 두 줄기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날 이후 우리는 예비부부였다. 내 아파트에서보다 그녀의 집에서 생활하는 날이 많아졌다. 위홍의 어머니는 못마땅해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딸이 하는 대로 지켜보기만 했다. 서울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고개를 저었다. 둘만 다녀오라고 했다. 우리가 아이처럼 장난칠 때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위홍의 음식 솜씨가 형편없어 집 주변의 식당을 이용할 때가 많았다. 그날도 자주 가는 식당에서 식사와 함께 술도 한잔했다. 술이 조금 취한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튀긴 닭 한 마리와 닭대가리도 서너 개 추가했다. 벼슬까지 그대로 있는 닭대가리는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저리 완벽하게 튀길 수 있을까, 신기했다.

집으로 돌아온 위홍이 한껏 들떠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독한 술을 여러 잔 했는데 또 마시겠다고 했다. 어머니를 식탁으로 불러냈고 술도 내왔다.

“엄마가 좋아하는 거. 닭 머리, 자요!”

어머니 잔에 술을 따른 그녀는 닭대가리를 집어 내밀었다. 닭대가리를 추가할 때 설마 먹으랴 싶었다. 무엇인가, 다른 용도에 쓸 거라는 생각에 묻지 않았다. 그런데 닭 부리 쪽을 집어 어머니에게 주자 황당했다. 저걸 먹는다고?

“나도 하나!”

모녀는 거침없이 부리를 잡고 닭대가리를 깨물었다. 파씩! 뼈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모녀의 입술에 피 섞인 뇌수가 묻었다. 그 순간 울컥 속이 뒤집어졌다. 화장실에서 한바탕 토한 후 집을 뛰쳐나왔다. 가능한 그녀의 집에서 멀어지기 위해 달리며 몇 번 더 토했다.

삼십여 년이 흐른 지금, 그날을 떠올리며 치킨을 배달시킨다. 음식문화의 차이를 그렇게밖에 소화할 수 없었을까? 사랑한다며 결혼하기로 했던 위홍. 그녀는 오늘도 닭대가리 안주로 술 한잔할까? 밀려오는 아린 마음에 치킨집으로 다시 전화를 걸어 추가 주문한다.

“우리나라도 닭대가리 있죠? 그것도 열 개쯤 보내줘요."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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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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