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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통신] 재불 사진작가 조미진, “정열에 열정을...렌즈를 통해 아름다움을 꿰뚫다”

기사승인 2018.06.14  15: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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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보다 먼저 책을 낸 글쟁이...카메라 접하며 심취하고 몰입하니 사진작가 돼

▲ 모네의 지베르니

[골프타임즈=이상일 파리 특파원] “저는 늘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인복이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주변 지인들이 도움을 주어 첫 책 출간도 쉽게 하게 됐고.”

필자가 조미진 사진작가를 처음 본 날은 2018년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파리에 있는 길상사라는 자그마한 사찰에서였다. 파리 주재 프랑스 교민들이 봉축 법회에 많이 동참해 주셨는데 행사가 끝나고 단체 사진을 찍을 때다. ‘살-캭!’ 하는 아주 유연한 카메라 샷 소리가 들려 뒤로 고개를 돌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프로 사진작가들이 ‘오두막’이라고도 애칭 하기도 하지만 젊은 남자들도 쉽게 들고 다니기 힘든 무거운 카메라를 어떤 여자가 안고 있지 않은가. 가느다란 두 팔로 마치 아기를 품에 안듯이.

이곳에서 전문 사진작가를 만나다니…궁금증이 생겨 수인사도 미루고 작가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양해를 구하는 둥 마는 둥 바로 질문 공세에 들어갔다. 먼저 궁금했다. 어떻게 파리에 오게 됐는지. 얼마나 됐는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해서 첫 질문을 사진작가로서의 어려움을 물었다. 일단 프로 사진작가로 인정하고, 세계 유명작가가 아니라면 이곳 파리에서 사진을 생활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감정도 보이면서...

그런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자기는 사진보다도 먼저 책을 낸 글쟁이란 것을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에선 대학에서 문창과를 다녔다며...한국에서도 제법 유명세를 탄 ‘프랑스에서 한국을 바라보다’라는 책을 낸 저자가 바로 자기라고 했다. 조미진, 필자가 파리 생활을 앞두고 파리에 관한 다수의 책을 구입했었는데 그중에 이 책도 있었다. 글이 약간 옆길로 새고 있다만 그때의 기억이 맞는다면 그녀가 쓴 글이 필자의 눈엔 진보. 즉, 약간 좌파 쪽으로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쓴 글(?)이라는 느낌도 받았지만, 우리나라의 인구문제나 복지, 교육제도 같은 다소 정치색도 깔린 글이지만 아주 객관성 있게 맛나게 엮어서 재미있게 읽었다는 기억이 난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의문점이 하나 해소됐는데 작가가 파리 제8대학 출신이란다. 파리에서 유명한 극좌 성향을 가진 학교. 필자 생각엔 아마 작가는 그 학교에 다니면서?...

“사진을 손댄 뒤에도 첫 개인전이나 두 번째 개인전도 주변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했습니다.” 사진전이란 제법 돈이 드는 행사인데도 어렵지 않게 벌써 두 번이나 열었단다. 내년 4월에는 서울에서 3번째 전시회를 열도록 이미 화랑과 협의를 마쳤단다. 겸손하게 지인들의 도움이라 표현했지만 필자는 그녀가 작가로서의 역량이 이미 프로의 수준도 넘어섰다는 생각을 해보게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호주 시드니에서 유학을 했어요. 그곳에서 프랑스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져 파리로 따라 와서 결혼을 했네요. 벌써 18년이 지났네요.”

▲ 재불 사진작가 조미진

부모형제를 떠나 의지할 때 없는 생소한 곳에서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며 생활하자니 어려움이 많았단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않아 정보도 지인도 없고.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자기 몫이라 생각하고 순응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단다.

여행을 좋아해 출장을 가는 남편을 졸라 어린아이들까지 동반해서 같이 다녔단다.

남편이 일하는 동안에는 아이들과 주변을 돌아보고 출장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잠든 아이들 옆에서 여행 칼럼을 쓰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단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제 나이 41살에 독학으로 파리 제8대학 불문학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프랑스의 문화나 역사 그들의 의식세계 등 많은 것을 알기에도 좋았고 평소 좋아하는 문학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단다.

아이들을 키우며 여의치 않은 여건이었지만 힘들게 독학으로 프랑스어를 공부해 유급하지 않고 졸업을 한 것이 아주 큰 자랑이라고 했다.

“프랑스 대학은 들어가기는 쉽지만 졸업할 때는 30%만 졸업할 정도로 어렵고 석사와 다르게 공부할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더군요. 특히 불문학이 더 그래요. 그래서 제게는 졸업장이 저의 첫 번째 훈장입니다.”

“8대학을 졸업한 이후 이곳의 한위클리 교민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며 명사 인터뷰를 자주 하게 됐고 제가 욕심이 많아선지 이 분야에서도 최상이 되고 싶어 카메라를 공부하게 됐고 그러다 그기에 심취하게 되고 몰입하게 되고... 어느 날 뒤 돌아보니 제법 자란 사진작가로 변해 있더라구요.”

그 바쁜 와중에 어떻게 사진작가가 되려고 했느냐는 질문에 최상추구였다고 아주 쉽게 답을 던져 준다.

하면서 “매일 못 찍게 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파리를 걸으면서 사진을 찍자고 한 약속을 지금까지도 지켜왔어요” 기성작가가 되고 난 뒤 자기도 모르게 어느덧 프로 근성도 생겼고 모든 것에 치열하다 싶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단다.

필자 주변에 있는 유명 프로 작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정열(情熱)에 열정(熱情)을 더하면 아름다움이 보이고 환희가 향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을 잡을 수 있다.-

필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가의 내공을 강하게 받았는데 작가는 렌즈를 통해 이미 심안(心眼)을 얻고 수관(修觀)의 경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작가로서의 위치를 떠나 이국땅에서 살아온 삶의 의미? 보람? 그런 것이 있다면 하고 필자가 물었다.

“68년생. 한국 나이로 51세, 이곳 나이로는 49세, 입니다. 20대에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느라 치열했고, 삼십대는 낯선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느라 치열했네요. 사십대는 공부와 일을 치열하게 했습니다. 삶에 여한이 없다할 정도로.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50이 되어서는 ‘이제부터는 덤으로 사는 삶이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해서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면 같이 나눌 수 있는 삶을 살자’ 하고 있습니다.”

이어 “그동안 늘 긴장하고 두려움과 게으름을 경계하며 치열... 하하하 그러네요, 치열하게 살다 보니, 다소의 여유를 잃어 버렸고... 그러나 다행히 내 속 깊이 잠재된 사진과 글쓰기를 이제라도 찾을 수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 아주 큰 보람입니다.”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왔다면서 치열이란 말에서 웃음까지 터뜨리며. 겸연쩍어 해 보인다.

돌아서면서 필자는 한 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한 여인의 열정과 고뇌, 그리고 사랑과 환희를 렌즈를 통해 느껴보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우리 동포가 이 작가와 같이 세계 곳곳에서 최상의 삶을 위해 열정을 다하여 치열하게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 에펠탑

도담 이상일 파리특파원|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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