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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4千字소설 제33화] 페이스북의 댓글 여인

기사승인 2018.08.24  10: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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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로 보인 때가 있었다니 다행이다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사십여 년 만의 해후라고 했다.

누군가의 장난 메시지로 무시했는데 만나자는 약속 날짜가 되자 새벽부터 초조해졌다. 결국 오전 내내 안절부절못하다가 점심도 대충 때우고 집을 나섰다.

-사십 년 만의 해후다.

25일 오후 2시. 서울대공원 호랑이 동상 앞에서 보자.

예쁜 여자 이예나.

서울대공원의 호수에 이르자 스마트폰의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각까지는 아직 삼십 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빨리 걷던 걸음을 늦추며 호숫가의 소나무에 앉은 왜가리를 바라다보았다. 왜가리 위로 호수를 가로지르는 리프트가 끊임없이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날갯짓 몇 번이면 청계산 정상으로 훌쩍 옮겨 앉는데 리프트만 쳐다보는 왜가리의 사연이 궁금했다. 어쩌면 죽은 짝을 마냥 기다리는 것인지 모른다며 다리를 건너갔다.

다리를 건너자 오른쪽의 작은 동물원에서 분뇨 냄새가 밀려왔다. 역했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익숙해졌다. 당나귀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라 정(鄭)이 왜 당나귀 정자(字)가 됐나 하면…….

중국 황제의 성이 나라 정이었어. 어느 간신이 황제와 같은 성을 쓰는 불경스러운 신하가 있다며 한 충신을 모함했지. 황제는 당장 능지처참할 듯 충신을 다그쳤어. 그러자 충신은 자신의 성은 나라 정이 아니라 어리석은 당나귀 정이라고 했어. 나라 정은 사람 인(人)자로 시작하지만 당나귀 정은 당나귀 귀를 세운 것처럼 쓴다고 하자 황제가 요절복통하며 살려 줬어.

그녀, 한은영은 당시 조상님은 지혜로운데 그 자손인 나는 멍청하다고 놀렸었다. 여자의 마음을 챙길 줄 모른다며 답답해하더니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떠났다. 그 은영이가 이예나로 개명했나, 추측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은영은 말자 숙자 명자처럼 자로 끝나는 일본식이 아닌 이름을 좋아했다. 세련되고 아름답다며 아버지의 작명 감각을 자랑했었다.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은영이가 어떤 계기로 개명했을지 모른다며 모자를 벗어 부채질하다가 다시 썼다. 정말 이예나가 그녀라면 내가 떠날 수밖에 없을 만큼 답답한 사람이었느냐, 물을 참이었다. 인제 와서 그 대답을 듣는다고 지난날의 가슴앓이 한 아픔을 보상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호랑이 동상 쪽을 바라보았다. 호랑이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그녀가 먼저 도착했을지 몰라 살펴보았으나 혼자 서 있는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동상 앞으로 가지 않고 매점에서 생수를 샀다. 한 모금 마시다가 초가의 샘을 떠올렸다. 은영이는 그 샘터를 유난히 좋아했다. 나와의 데이트보다 샘터 주변의 채송화 꽃에 빠져들곤 했다.

-저 며느리로 어때요?

은영은 초가의 초로 부부에게 샘터 때문에 시집와야겠다며 아드님은 어디 있느냐고 묻곤 했다. 부부도 나를 쳐다보며 매번 똑같이 물었다.

-옆에 있는 총각은 어찌하고?

은영이가 대답했던가? 그냥 웃었던가?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다시 스마트폰 시계를 확인했다. 두 시 정각. 그러나 호랑이 동상 앞에 은영이는 없었다. 아무리 사십 년 만의 만남이지만, 얼굴을 몰라 볼 정도는 아닐 것이다. 육십 중반의 할머니가 된 은영이에게 여전히 도도할 만큼 반듯했던 이목구비가 남아있을 것이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녀를 보면 단번에 알아볼 것이다.

-나 늙으면 어떤 모습일까?

언제부터인가, 자주 던지는 은영이의 질문이었다. 왜 그런 상상을 하느냐고 되물으면 늘 돌아오는 대답은 맥이 빠졌다.

-그냥.

그 질문을 자주 할 무렵 어쩌면 그녀는 나와의 결혼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는지 모른다. 이 남자에게 평생을 맡겨도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자 던진 질문인데 내가 못 알아듣자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사라졌는지 모른다. 당시 어떤 모습이기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우아하게 늙어가고 있지. 라고 허풍이라도 떨었다면 내 곁에 남았을까?

훗날 알았지만, 은영은 일본에 있는 이모의 중매로 교포와 결혼했다. 나도 결혼하면서 첫사랑의 아픔은 어느 사이 까맣게 잊었다. 그 기억을 되살린 것은 ‘25일 오후 2시. 서울대공원 호랑이 동상 앞에서 보자’는 스마트폰의 페이스북 댓글 세 줄이었다.

후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하는 글에 만나자는 댓글을 올린 이름은 이예나였으나 엉뚱하게 은영이가 떠올랐다. 지금껏 까맣게 잊고 살았던 그녀가 떠올라 당황스러우면서도 반가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호랑이 동상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사실 돌아볼 것도 없이 한눈에 들어오는 약속 장소였으나 그녀가 보이지 않자 초조해졌다. 닷새 전의 댓글 약속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지하철 대공원역에 내려 허겁지겁 올라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서성거렸다. 대공원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고, 매점 앞의 그늘에 서 있다가 동상 앞으로 갔다. 남매를 둔 젊은 부부의 사진을 찍어주고 돌아설 때 다리가 불편한 걸음의 할머니가 다가왔다.

“너 끝까지 못 알아보는구나. 서운해서 눈물 난다.”

낯선 할머니의 말에 뒤를 돌아다보았다. 내 뒤의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뭘 돌아다봐. 유석이 너에게 하는 말인데.”

턱밑까지 다가온 할머니로부터 한 걸음 물러섰다.“유석아! 나야. 명옥이. 김명옥.”

김명옥? 아! 토끼집 누나…….

“이예나가 명옥 누나라고?”

그녀가 쿡쿡 웃으며 다가와 포옹하며 등을 토닥였다.

“너도 늙었구나. 그래도 학생 때처럼 예쁘다.”

학생 때처럼 예쁘다는 말에 포옹을 풀고 뒤로 물러섰다. 고교 이학년 겨울방학 중 눈 오는 날이었다. 누나에게 이끌리어 마을 동산 외진 곳으로 산책하러 갔다가 입술 도둑을 맞았다. 대학교 일학년인 누나는 내가 예뻐서 키스한 거라며 깔깔거렸다.

“너 지금도 내가 무섭니? 뒷걸음치게.”

그렇다고 대답하려는데 청년이 휠체어를 밀고와 김명옥을 앉혔다. 청년은 구십도 배꼽 인사를 하며 김명옥 할머니 둘째 손자라고 큰 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청년은 그녀에게 귓속말했다. 할머니의 첫사랑 남자가 멋지다며 엄지를 척 세웠다. 그리곤 휠체어를 내게 넘겼다.

“유석아! 휠체어 밀 수 있지?”

고개를 끄떡이곤 천천히 밀었다. 코끼리열차 정류장을 지나 서울랜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네가 발표하는 글 다 읽고 있어. 재밌더라.”

그녀는 소설집에서 월간지에 쓰고 있는 콩트와 인터넷 온라인신문의 짧은 소설 연재까지 다 읽고 있었다. 문학동우회 카페까지 알고 손님으로 방문하는 등 내 문학 활동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선생이 되면서 포기했어. 시를…….”

강릉 단오제 때 전국 학생백일장에서 장원한 그녀의 꿈은 시인이었다.

“시 읽어주던 거 생각나?”

“그럼! 누나는 시낭송할 때만 여자 같았으니까.”

그래도 여자로 보인 때가 있었다니 다행이라며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불쑥 만나자고 해서.”

이예나가 은영이기를 바랐다가 뜻밖의 김명옥 누나의 개명 이름이라는 사실에 순간 실망했었다. 그러나 휠체어를 밀면서 애틋한 감정에 콧등이 시큰거렸다. 누나가 지금껏 나를 첫사랑으로 간직한 마음에 감사하고 싶은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힘들지? 손자 놈 부를까?”

괜찮다고 하자 가끔 만나서 밥 먹자는 말에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내가 누나가 사는 동네로 간다고 하자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일흔넷의 그녀 손가락에 장을 걸었다. 명옥 누나가 손가락을 풀어줄 때까지 기다렸다.

뜨거운 한여름인데 하늘은 가을 같았다. 하얀 뭉게구름이 망망대해의 파도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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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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