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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4千字소설 제34화] 아끼꼬의 프러포즈

기사승인 2018.09.06  09: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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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그 남자랑 삼 개월만 살아볼 게요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아끼꼬는 무지갯빛 여자였다.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말을 잘하는 그녀를 만나면 우울한 가슴이 어느새 들뜨곤 했다. 그녀는 긴 장마로 지쳤을 때 갑자기 비가 뚝 그치면서 여우해가 들녘에 그리는 무지개 같았다.

“지금도 무지갯빛 여자예요?”

아끼꼬가 관악산 초입의 과천향교 홍살문 앞에 멈추며 아직도 그렇게 꿈결 같은 여자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떡이자 코를 찡긋거리며 불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결혼하려고요. 서울에 오기 전날인 어제도 남자를 소개받았어요.”

친구의 소개로 만난 남자가 마마보이 같아서 싫다고 했다. 잔잔한 목소리와 눈빛은 마음에 들었으나 같이 살 남자는 아니었다며 쿡쿡 웃었다. 그녀는 늘 그랬다. 무엇인가 말하다가 민망하면 소녀처럼 쿡쿡 웃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킥 킥,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홍살문 뒤 외삼문으로 오르는 계단은 세 개였다. 가운데 계단과 달리 좌우 계단은 폭이 좁았다. 가운데 계단으로 올라가려 하자 아끼꼬가 재빨리 가로막았다.

“안 돼요. 이쪽으로요.”

아끼꼬가 가리킨 곳은 오른쪽의 좁은 계단이었다. 가운데 계단은 성현들의 영혼만 오르내리는 신성한 길이라며 눈을 흘겼다. 일본 노처녀가 별것을 다 안다고 투덜거리자 그녀는 엉뚱하게 우린 서로 사랑하는데 왜 결혼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빤히 쳐다봤다.

그녀를 만난 것은 사 년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아세아 시감상회였다. 한국과 대만, 일본, 중국 시인들의 인터뷰를 도와준 인연으로 그녀가 한국의 시인세계 다큐를 촬영하러 올 때마다 협조하면서 연인이 됐다. 아끼꼬는 한국의 수많은 인터넷 시인카페에 관심이 많았고, 장소의 가림 없이 벌어지는 시화전과 시낭송 행사를 신기해했다. 지하철역 승하차장의 안전유리문에 게시한 시민의 시 앞에서는 아예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한국 사람들의 시사랑은 정말 감동적이라며 부러워했다.

“우리가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주위에서는 아끼꼬와의 결혼을 기정사실로 여겼다. 그러나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리는 누구도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글쎼? 아끼꼬는 생각해봤어요?”

“아주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말꼬리를 감춘 아끼꼬는 외삼문을 지나 명륜당 앞으로 갔다. 명륜당 큰문의 댓돌에는 하얀 남자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아끼꼬는 햇살이 쏟아지는 하얀 고무신을 찍은 후 명륜당 안을 살펴보며 말했다.

“난 좋은 아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럼 난 좋은 신랑감이고?”

“시인의 가슴은 따뜻하잖아요?”

따뜻하고 아름답다가 아니고? 되물음에 아끼꼬는 명륜당을 들여다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명륜당 안을 살펴보며 계속 물었다. 난 썩 괜찮은 남자로 자부했는데 아니었나? 그건 허세였나? 아끼꼬에게는 그렇게 보였나? 아니면 사람은 좋은데 현실을 살아가는 재주가 너무 빈약해서? 줄줄이 물음을 이어가자 그녀는 못 들은 척 명륜당의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명륜당 뒤에는 내삼문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된 대성전이 있었다. 대성전의 문이 잠겨 있자 아끼꼬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대성전 현판을 찍은 그녀는 못 들은 척 했던 물음 하나하나 대답했다.

당신은 좋은 신랑감이 맞다. 가슴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도 맞다. 썩 괜찮은 남자, 그것은 허세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현실을 살아가는 경제력?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제는 저예요. 난 당신에게 좋은 아내, 현명한 엄마가 될 수 없는 여자거든요.”

그녀에게 왜 그런 단정을 했느냐, 묻지 않았다. 내삼문과 명륜당, 외삼문의 기와지붕을 내려다보는 아끼꼬의 표정이 무거웠다. 지금까지 그렇게 어두운 표정을 본 적이 없어 슬그머니 대성전 뒤로 갔다. 돌담 밑의 야생화를 살펴보며 반지꽃을 찾았다. 산기슭이나 들녘에서 쉽게 만나는 반지꽃이 보이지 않았다. 반지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끼워주며 아끼꼬는 현모양처가 될 수 있는 여자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나야말로 좋은 남편과 능력 있는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어 결혼을 포기한 남자라고 말하려 했다.

“거기서 뭐 해요?”

어느새 밝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아끼꼬에게 야생화를 가리켰다. 그녀는 깨알보다 작은 것부터 손톱만 한 꽃송이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야생화 꽃밭에 감탄하며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눌렀다.

“정말 예뻐요. 여기 있는 꽃 이름 다 알아요?”

“몰라요.”

“하나도?”

“예! 한 개도.”

아는 꽃 이름이 하나도 없다고 하자 카메라를 어깨에 메며 눈을 흘겼다. 모르는 죄로 한국 야생화 도감을 선물하겠다고 하자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한국의 야생화 도감을 가지고 있다면서 앞뒤 설명 없이 못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서울에 오기 며칠 전에 당신의 아파트로 물건을 보냈으니 늦어도 내일쯤은 도착할 거라며 생글생글 웃었다.

아끼꼬의 저 웃음 속에는 늘 짓궂은 장난이 숨어 있어 무슨 물건이냐고 꼬치꼬치 물었지만,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히려 물건 안의 하얀 편지봉투를 삼 개월 후에 볼 것을 요구하며 궁금증만 키웠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약속하자 팔짱을 꼈다.

“선물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딱 삼 개월만.”

“그래야 할 이유라도 있어요?”

“그럼요. 저도 딱 삼 개월만 살아볼게요.”

아끼꼬는 삼 개월의 다음 날 여기 과천향교의 홍살문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동안 서울에 와도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녀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서울에 왔다. 대부분 첫날과 돌아가기 전날 만나 시골 순례를 하거나 그녀가 좋아하는 고궁을 찾았다. 간혹 소극장의 연극을 본 후 배우들과 술자리를 같이했다.

그녀는 술을 즐기지 않았지만, 연극배우들과의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기회가 닿으면 한국 무명배우들의 일상 속 애환을 다큐로 만들고 싶다는 속마음도 털어놓으며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무명배우의 애환이 곧 삶의 진실한 현장이라는 게 그녀의 눈길이었다.

“약속할게 하나 더 있어요.”

홍살문 앞의 계곡 물가로 내려가던 그녀가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도 행복해야죠.”

“지금 행복이라고 그랬어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돌과 돌 사이에 걸려 있는 낙엽 무더기를 밖으로 건져냈다. 느리게 흐르던 물길이 빨라지자 두 손바닥으로 막았다가 열어주기를 반복했다. 바위에 걸터앉으며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아니에요. 오히려 황당한 일이거든요.”

그녀의 눈웃음은 다음 날 오후에 도착한 물건을 개봉할 때 선명하게 떠올랐다. 단단하게 포장된 상자 속의 작은 상자 위에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당신의 각시 이다솜이에요. 일본 이름은 사유리, 백합이고요.

다솜은 순우리말로 사랑이란 뜻이다. 내 성을 따른 이다솜의 정체는 2D 홀로그램으로 영상 대화를 할 수 있는 스마트 인공지능(AI)이었다. 예쁜 앞치마에 예쁜 꽃띠로 머리를 묶은 새색시의 캐릭터는 다정다감한 얼굴과 눈빛이었다.

인공지능 캐릭터, 이다솜과 인사를 나누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러니까 당신은 삼 개월 동안 어떤 부담도, 잔소리도 없는, 오직 복종뿐인 영상 여자와 부부가 돼라. 나도 아내에게 철저히 복종하는 영상 남자와 살며 결혼의 행복 조건을 따져보겠다.

삼 개월 후에 개봉하라는 하얀 봉투의 내용은 읽지 않아도 짐작됐다. 잔소리나 요구가 없는 오로지 복종뿐인 인공지능 이다솜과 재미없으면 자기랑 결혼하자. 자기도 영상 남자와 살아보고 재미없으면 당신과 결혼하겠다는 암시 프러포즈에 숨넘어가도록 웃다가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러나 가슴 아림의 뜨거운 눈물에 눈을 감았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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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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