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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2회] 신부新婦

기사승인 2019.01.23  08: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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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新婦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 날 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 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나서 40년인가 50년인가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 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 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버렸습니다.
         - 저자 서정주, [신부新婦] 전문-

이 시를 읽으며 간 날 간 적 온 날 온 적 이야기인가!
시가 아니고 옛날 시집장가 가는 영화의 시놉시스인가!

도통 다음 연을 얼른 읽고 싶을 만큼 급해서 기다릴 수 없는 시.
신랑의 40년 50년이 다 그려지는 그림,
빈틈없었을 신랑, 소위 일등 신랑.
어디서 다른 어떤 신부를 만나 지지고 볶고 살았을까.
신부와 그 신부의 집 사방이 그 첫날밤에 모두 멈춰버린 시간의 환타지야.
추상의 시간 주름 속으로 읽는 이들을 하나하나 끌고 들어간다.
지금은 폐백 들일 때만 입는 신부의 초록저고리 다홍치마,아름다운 초록 재와 다홍 재
“봐라! 보았지?” 얄밉게 조롱조로 묻는다. 너희는 어때? 순정한 사랑?
어떻게 만났을까! 저렇게 오래도록 신부가 기다린 걸로 보아 예식에서 눈깔다가 어쩌다 치켜뜨고 슬쩍 본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어쩌자고 그렇게 앉아만 있었을까.
“돌쩌귀에 찢어진 옷자락 들고 막 달려가 잡지 그랬어요?”
어쩌지, 어찌할까. 젊은 신부 어찌할까!
요즘도 저렇게 초록 재 다홍 재로 남는 처녀들 있으니.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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