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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23회] 서양탕국

기사승인 2019.06.26  12: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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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탕국

한국동란 후
땔나무 사러
삼촌 따라 간 역 앞

바지게 고임 짐꾼들
까만 사발 국물
꿀꺽꿀꺽 후루룩
흡흡 한 방울 까지

여름 냉수 마시듯
단 번에 들이키고
“무엇 우린 진국인지 입에 착착 안기네요.”

국 이름이 무엇이오?
“서양탕국 이래요”
“아 요게 만병통치약이구려.”
“누구는 커피라 하던 디.”

카페 머그잔 속 하트 불며
혼자 노는 더 어려진 그 때 그 아이.
         -저자 정옥임 [서양탕국] 전문-

 

한국전쟁이 끝나고 10년 이후 쯤에 광주에 갔다. 시골서 자라 읍네 까지는 가봤지만 도회지는 첨이었다. 게다가 산길을 굽이돌아 첨 타는 장거리 버스길이 험해 멀미까지 심했다. 광주차부에 도착, 버스정류장에 서서 하염없이 마중 나와 있을 거라는 둘째 외삼촌을 기다렸다. 차멀미로 인한 속 매슥거림과 빵빵거리는 소음에 눈이 팽팽 돌았다.

더구나 목덜미가 굵은 뚱뚱한 사람들이 지나가고 또 지나갔다. 나는 무섭고 두려웠다. 맘속으로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20번쯤 외쳤을 때였다. 아는 얼굴이 지나갔다. 그냥 지나쳐갔다. 나는 번개처럼 뛰어가 외삼촌! 하고 크게 불렀다. 외삼촌은 깜짝 놀랐다. 그때서야 지정한 버스의 앞차를 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하나 돌이키고 싶지 않은 경험! 삼촌은 그 당시 대학생이었고 부잣집에 입주한 가정교사였다. 나는 월반을 거듭, 초등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한 수험생이었다. 중학교를 가기 위해 그것도 외삼촌 권유로 장학생 시험을 치르기 위해 간 것이다. 그리고 우물 안 개구리임을 입증 받았다. 외삼촌이 나의 수학능력이 형편 무인 지경을 깨닫게 해 주었다.

또 하나의 선명한 시골뜨기 그림 하나 더. 그 집 할머니를 따라 역전에 갔다. 역전엔 지게 나무짐꾼들이 늘어서 있었다. 땔나무가 귀하던 때의 땔감을 팔려는 사람들. 그이들은 정신이 맑아지고 피로가 풀리는 만병통치약, 서양탕국 커피를 한 사발씩 원 샷으로 들이키고 있었다. 고소한 커피 향냄새가 좋았다.

커피 향을 뒤로 하고 앞서서 철길을 따라 집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기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철길 따라 걷던 사람들이 옆으로 비켜났다. 할머니가 손을 내저으며 뒤쫓아 왔다. 기적이 울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어떤 사람이 나를 끌어 갓길로 끌어냈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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