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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25회] 칼을 가는 남자

기사승인 2019.07.17  12: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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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가는 남자

나의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칼을 자주 가셨다. 긴 숫돌을 나무에 얹어 세우고 풀을 깎거나 벼를 베기 위해 낫도, 특히 식칼은 신경 써서 자주 갈았다. 어느 날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칼을 가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남자보다 약하지. 들일을 하고 오면 쉬고 싶을 텐데 밥상을 차려야 하니 칼이라도 잘 들어야지.” 아버지가 칼을 가는 행위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었다. 나도 결혼하자마자 숫돌부터 샀다. 칼을 가는 남자, 나는 이 말을 사랑의 의미와 동일시한다.

문화적 원류에서 보면 칼갈이는 생계와 방위의 수단이었다. 수렵생활에 절대적인 도구였던 칼은 짐승을 잡아 골고루 나누어 먹기 위해 칼을 가는 평화의 행위였다. 나는 칼을 가는 행위를 두 종류로 분류한다.

삼국지 여백사 집 가족들이 칼을 가는 행위와 아버지의 칼은 사랑의 칼이요, 조조가 여백사의 가족을 몰살한 행위, 전쟁터 조직배의 칼날은 폭력적이다. 어제의 동지들이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져 칼을 갈고, 종교적으로 갈라져 살인적인 칼을 갈아대며 사이버 공간에 사람을 올려놓고 집단으로, 남북을 두고, 지역으로 갈라져 칼을 간다.

우리의 칼은 검(劍)과 도(刀)를 포함한다. 키가 큰 서양인들은 내려찍기 위한 뾰족한 검이 필요했고, 키가 작은 동양인들은 한 쪽이 무딘 도를 발전시켰다.

칼을 갈 때마다 나는 새삼 숫돌의 고마움을 느낀다. 떠들어대는 소수보다 조용한 다수의 침묵 속에서 칼갈이의 희망을 찾는다.
          -저자 강기옥 ‘칼을 가는 남자‘ 일부-

강기옥 저자는 시집을 여러 권, 평론집과 에세이 칼럼 집을 낸 부지런한 사람이다. 나와 나란히 앉아 황진이 문학상을 받았다. 2번째 시집을 내고선 직접 차를 몰고 우리 집 앞 까지 찾아온 그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칼을 가는 남자]를 우편으로 받고 화들짝 놀랐다.

책 제목이 강열했다. 그런데 이 수필을 읽고 그 자리에서 시 한편을 써서 저자에게 보냈다. 좋은 글은 감동을 준다. 저자는 칼을 갈면서 행복을 벼르지만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아침엔 하루의 계획을 생각하고 저녁 설거지에는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도 하고 칼을 닦는다.

내 자식들이 한창 클 때 궁여지책으로 그룹 글짓기를 가르쳤다. 칼에 대한 연상 시간이었는데 학생들이 막막해 할 때 힌트를 조금 내 비쳤다. 어머니의 부엌 칼, 도둑의 칼. 조각칼, 전각 칼. 여기까지만 말해도 아이들은 은장도 금장도 무려 50여 문항을 거든히 만들어냈다. 무디고 단단한 구두 칼, 가죽을 얇게 뜨는데 필요한 곡선 칼. 두 날을 이은 가위. 칼과 도끼로 무장한 바이킹. 한약방의 작두 무당의 작두칼에 이르기까지.

칼은 인류의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칼의 노래 골든아워 메스와 가위. 쌍둥이 칼로 통하는 독일에선 칼을 선물하는 풍습이 일반화 되어 있다. 나도 과도 하나 선물 받고 싶다. 남대문에서 구입한 50년 쓰던 휘파람 소리를 내며 잘 휘어지지만 잘깍이는 과도. 손잡이가 썩으면서 안에서 녹이 슬어 끊어졌다. 나무가 쇠를 이긴 셈이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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