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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30회] 내가 백석이 되어

기사승인 2019.08.21  15: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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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백석이 되어

나는 갔다
백석이 되어 찔레꽃 꺾어들고 갔다
간밤에 하얀 까치가 물어다준 신발을 신고 갔다
그리운 사람을 찾아갔는데 길을 몰라도
찾아갈 수 있다는 신비한 신발을 신고 갔다

성북동 언덕길을 지나
길상사 넓은 마당 느티나무 아래서
젊은 여인들은 날 알아보지 못하고
차를 마시며 부처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까치는 내가 온다고 반기며 자야에게 달려갔고
나는 극락전 마당 모래를 밟으며 갔다
눈 오는 날 재로 뿌려달라던 한 유언을 밟고 갔다

참나무 밑에서 달을 보던 자야가 나를 반긴다
느티나무 밑은 대낮인데
참나무 밑은 우리 둘만의 밤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
죽어서 만나는 설움이 무슨 기쁨이냐고 울었다
한참 울다 보니
그것은 장발張勃이 그려놓고 간
그녀의 스무 살 때 치마였다

나는 말을 못했다
찾아오라던 그녀의 집을 죽은 뒤에 찾아와서도 말을 못했다
찔레꽃 향기처럼 속이 타 들어가는 말을 못했다
     -저자 이생진 [내가 백석이 되어] 전문-

이생진 선생님의 시는 낭송하기 좋게 운(라임)이 잘 넘어가고 저절로 감동이 이는 시여서 특히 이 시는 전문 낭송 가들도 즐겨 낭송하여 잘 알려진 시이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세계시(world poetry)에서다.

번역하면서 선생님 시를 혼자 읊조리곤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슬프고 눈물 나오고 웃음도 나왔다. 한편의 영화 시놉시스 같은 선생님의 시는 들을 때마다 읽을 때마다 감탄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시를 훔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시를 훔쳐가는 사람]이라는 선생님의 시가 도봉문학에 실렸다. 이 시를 읽고 마음을 정했다. 시의 내용에서 선생님께서도 언급하셨지만 나로 말하면 선생님 시를 훔쳐다 돈 받고 팔 위인은 못된다. 그 점은 선생님께서도 십분 이해하시리라 믿고 싶다. 단지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널리널리 읽게 하고 그 기쁨과 슬픔과 마음의 동요를 함께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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