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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31회] 어느 날 오후

기사승인 2019.08.28  00:5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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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

산골 논배미의 낯짝만 한
우리 집 마당은
아이들 도화지 모양 모로 찢어져 있는데
그 한 모서린
빨강 노랑으로 피어 있는 채송화 꽃밭이
열인지 스물인지 알 수 없는 나비의 날개로
둘러져 있는데
봉숭아 몇 포기가
동생을 거느린 형같이 우뚝 서선
세월이 쉬었다 간 흔적이 두어 개
개울이 되어 흐르는 내 이마를 쳐다보고
그 다음에는
봉숭아물을 들이던 내 손톱을
내려다본다
        -저자 함동선 [어느 날 오후] 전문-

함동선 선생님은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19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많은 시집과 시 선집이 내셨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현대시 문학기행 낭송대회에서다.

그 때 내가 낭송에 가져간 시가 우리 집 [머슴 만열이]라는 시인데 머슴 만열이는 한국동란 전쟁포로이며 육군소좌로 혀 짧은 이북 사투리가 심한 우리 동네 물짠 돌림 머슴이었다. 제법 긴 시였는데 선생님께서 좋아하신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내가 문단 활동을 쉬다가 근 10 수년을 넘어 우연하게 만나 선생님께서 알아보셔서 감동받았고 최근 제2시집을 내고 책을 직접 드리지 못하고 부쳐드렸는데 전화를 주셔서 뛸 듯이 기뻤다.

선생님은 요 근래에 분단으로 인한 그리운 가족을 그리는 시집을 많이 출간 [눈 감으면 보이는 어머니] [고향은 멀리서 생각하는 것] [한줌의 흙] 등이 있다.

특히 [북에서 온 펜지2]는 이북 사투리가 가미 되어 울림이 배가 되었다.

/가심에 나비 날아오면 꽃이 피구/ 머리에 낭구닢 지면 가을이 왓십니다./ 아이고 인전 지쳐서리/ 보름달 보구 만나야곘십니다/ 남으로 날아가는 끼러기 편에 이러케 씁니다

선생님 시를 대해 읽으면서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오래 살았던 머슴 만열이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심한 이북사투리와 급한 말더듬이여서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었다. 그런 그가 이젠 노동일을 못해 요양 병원에서 환자를 보살피는 봉사자가 되었다고 한다. 굉장한 권력자의 아들이었다는 소문이 있어 더 가슴 아프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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