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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36회] 출생신고

기사승인 2019.10.02  12: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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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

보신각종이 울려 퍼지는 날
주민등록증을 꺼내
나를 갱신한다.
1929년 10월 1일생을
2017년 1월 1일생으로
우리나이 89
그런데 갓 태어난 아이처럼
옹알거린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옹알이지만
나는 그 응석을 포대기에 안고
유아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올 한 해 만이라도
따뜻한 모판에 누워
하얀 뿌리를 내리고 싶다.
        -저자 이생진 시 [출생신고] 전문-

<내가 백석이 되어> 선생님 시를 네이버 골프 시 산책에 올리고 나서 뵙고 싶다는 말씀을 곁들여 영상을 보내드렸더니 쾌히 시간을 정해주시고 만날 장소는 나더러 정하라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이 잘 가시는 우이동 백란이란 곳으로 정했다. 그리고 장고 끝에 시 소설 수필을 쓰고 말도 잘하는 마 작가와 함께 가기로 했다. 미리 말씀을 못 드린 점이 살짝 걱정스럽긴 했지만 한편으로 나의 어눌함을 넘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합류를 결정했다.

우리는 너무 일찍 40분 전에 도착했다. 그런데다 백란사장에게 예약했는데 출타중이어서 순간 낭패감이 들었다. 시간이 가까워오자 앞에 트인 길에 눈길을 보내다가 길 아래로 혼자 걸어 내려갔다. 얼마쯤 가니 모자 쓴 여자인지 남자인지 노소조차 구분이 안가는 수수한 차림새 등산복에 작은 크로스 가방을 맨 다소 느리지만 경쾌한 걸음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혹시 선생님이신가 싶어 “이생진 선생님!” 하고 크게 소리쳤다. 멀리서 손을 흔드셨다. 그리고 선생님 팔을 끼고 올라왔다. 글로 만나 마치 자주 만나오던 사이처럼 격이 없는 듯 덥석 팔을 낀 내 손을 보고 나도 놀라웠다.

저녁시간까지 2시간여, 선생님 제지로 독단 감행, 내 맘대로 아이스크림 애플파이와 카모마일 커피라떼를 주문,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친구는 선생님 육필 시를 얻어내고 사진도 찍었다. 차로 목을 축이면서 값진 생활철학이 담긴 귀한 말씀을 들었다.

만보기를 차고 다니시며 만보걷기, 영어선생님으로써 이왕 해온 영어를 잊지 않기 위해 cnn방송을 매일 들으시며 토요일에 일간신문 여섯 가지를 사 새로 출간한 책을 보고 새 출간 책을 사 매일 한권씩 읽고 매일 글을 쓰신다고 했다. 강의 같은 말씀 중에 하이라이트는 90세 들어 ‘혼자 있는 즐거움’을 아셨다면서 정말로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공감하는 바가 컸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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