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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37회] 두 아이들

기사승인 2019.10.09  07: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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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들

두 아이들이 우리나라 지도를 놓고< 삼팔선을 긋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는 지우개로 삼팔선을 지우고 < 또 지웠습니다

긋다가 잘못 그어 지우고 또 긋는 아이< 지우개로 지우고 또 지우는 아이

한 아이가 지우다가 말했습니다

이렇게 지워지는 삼팔선을 < 어른들은 왜 못 지우느냐고 투정했습니다

한 아이는 다시 삼팔선을 그으며 < 아빠가 말하는데 코 큰 아저씨들이

책상에 앉아서 삼팔선을 쭉 그었다고 <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말했습니다

한 아이는 지우면 되지 이렇게 잘 지워지는 < 삼팔선이잖아

두 아이는 종일 삼팔선을 지우고 긋고 < 또 지우다가 지도는 구멍이 나고 말았습니다

한 아이는 구멍 난 지도를 구기고 < 다 닳은 지우개를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또 다른 한 아이는 < 부러진 연필을 던져 버렸습니다 <두 아이들은 텅 빈 교실에

벌 받은 아이로 멍하니 서서 <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습니다
      -저자 신기선 시 [두 아이들] 지구문학 특별기획 대표 시 전문-

이 시를 고르시고 평을 쓰신 분은 비평가협회 이수화 고문님이시다. 문단 계에서 존경하는 분으로 제 마음 안에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다. 등단 때부터 격려 해주시고 작년에 저의 시집 평설을 써 주신 은혜를 입었다 그래서인지 두 아이들을 고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삼팔선이란 말 참 오랜만이다. 어릴 적 교과서에 수 없이 보이던 낱말이다. 세계 제 2차 대전의 전리품처럼 코 큰 사람들, 러시아와 미국이 땅 따먹기 놀이 방식으로 논의되다가 한국동란을 계기로 확고해진 삼팔선. 가위 바위 보 딱지치기 땅 따먹기 초콜릿 바꿔먹기 공차기 칼싸움놀이 전쟁놀이 등은 다 힘겨루기다.

동물들의 영역차지하기도 힘이 센 쪽이 술수 꼼수 눈가림 속임수 등 눈 번히 뜨고도 당할 수밖에 없다. 나눠먹기 하는 덩치들의 싸움을 넋 놓고 구경하는 쪽은 왜소한 작은 아이들의 몫이다. 놀이에 페어플레이는 약자에게 늘 불리하게 작용한다.

하찮은 놀이에서도 마음 상하는 쪽은 약자다. 요행수조차 따라주질 않는다. 조바심치기 때문일까! 자칫하다 억지 쓰기 반칙에 걸리고 만다. 굳건한 자기 방어할 힘이 없으니 판판 당한다. 누구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하는데, 답은 아는데 현실은 힘 있는 자의 영향 하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갑자기 요즘 1000만 부를 돌파한 북한 핵이 등장하는 스웨덴 요나스 요나슨 소설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이 떠오른다. 아무리 위험할지라도 상상과 게임과 놀이는 즐겁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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