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47

[정옥임의 시詩산책 42회] 평화를 빕니다

기사승인 2019.11.20  07:53:35

공유
default_news_ad1

평화를 빕니다

나에게는 세 가지 신비가 있다
첫째는 빗과 소리의 신비요
둘째는 만남의 신비요
셋째는 은총과 자비의 신비다
정년퇴임한지도 오래, 어느덧 종심의 나이에 이르러 나는
이 세가지 신비로움을 더욱 절실한 기도와 묵상으로 가슴에 품는다
나의 시는 하찮은 것, 이름 없는 생명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허리를 구부리고 저 아래 또 하나의 생명에 주시한다
그리고 그 우주의 숨결에 귀를 기우린다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의 감사의 삶 속에서
오직 시 하나만을 생각하며 평화를 빈다
나의 시에 평화가 있기를
    -저자 허형만 시 [평화를 빕니다] 전문-

처음 허형만선샌님의 시 <뒷굽>을 올리면서 올려야 되나 어째야 되나 무척 망설였었다. 유명 원로시인의 시를 고르고는 무척 긴장하게 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분의 시를 올리는 것은 대게 시의 첫 대면에 반한 경우라 하겠다.

사실 허형만선생님은 강남 시 낭송회에서 한 번 뵌 적이 있다. 그래서 용기를 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좋은 시는 나 혼자 읽기가 아까워 여러 독자들과 공유하고픈 간절한 마음이기도 하다. 저번 <뒷굽>도 그렇고 ‘평화를 빕니다’도 그랬다. 시와 첫 대면에 반한 시.

먼저 전화를 드릴까 하다 뱃장 좋게 그냥 올렸다. 수요일 선생님 시가 연재 됐다. 하루가 지났다. 이튿날에야 겨우 문자를 드렸다. 그런데 먼저 전화 주셨다. 이웃 할아버지처럼 넉넉하게 친절하셨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벙글벙글 이었다.

예술인, 특히 글 쓰는 사람에겐 문학이 종교인 사람도 많다. 일기를 쓰고 수시로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본다. 감동하는 글을 읽으면 울고 감상문도 가끔 쓰며 영감을 공유하여 덤으로 좋은 시 창작도 하게 된다. 질이 높은 언어를 구사하려고 닮으려고 애쓰면서 어쩌다 한편 쓰고 마치 출산한 아낙처럼 기뻐한다. 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의 시 <평화를 빕니다>는 종교의 바탕 속에 녹아 있는 경지의 시이다 성경의 언어요. 기도의 언어요. 높은음자리표 언어다. 저자는 두 개의 종교를 가지셨으니 배경이 든든한 부자이신 셈이다. 나도 이름만 걸쳐 놓은 종교인이다. 한없이 부끄럽다. 믿음으로 꽉 채운 세상으로 바라보는 눈은 얼마나 깨끗할까! 얼마나 편안할까? 얼마나 기쁠까! 매 시간마다 얼마나 기적일까!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ad73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