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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44회] 오동나무

기사승인 2019.12.05  01: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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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

오동나무 가얏고가/ 저러코롬
보랏빛 향기로 울리는 것은
다 까닭이 있으리라

오독오독/ 독한 오기로 앞강물 뒷강물
세월 네월 견디었을 것이므로
열두 줄에 새긴/ 열 두 달의 기록들

고스란히 안은 채
속울음 충경소리 되새 떼처럼 풀어놓을 때
봉황새도 어디선가 날아와
적막한 품에 고이 깃들었으리라

영혼의 상처들
오독오독 잘못 씹은
궁, 상, 각, 치, 우.
태곳적 현묘한 바람소리

허허실실 서리서리
명주실에 탱탱히 실려와
세반고리관 밀실에 부려놓았으리라

오동오동 너훌너훌
별무리 달무리 빙글빙글 둥기덩 덩기덩기
한밤 지새도록 꽃살문 한지창에
대숲바람 빗금소리
    -저자 나병춘 시 [오동나무] 전문-

위의 시를 읽으면 박자치기 가락치기가 없는데도 어깨춤이 절로 일어났다. 덩실 춤을 너울너울 추고 싶어진다. 저자는 가야금 산조 한곡쯤 꿰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흥에 취한 말과 악기가 내는 소리를 *저러코롬 빛으로 세월로 노래로 그려내는 게 어찌 쉬울까.

가야금은 오동나무로 만든 좁고 긴 직사각형의 공명통에 명주실로 꼰 12개의 줄을 기러기발로 받쳐 놓은 줄을 누르거나 뜯거나 퉁겨 소리를 내는데 장구 반주가 따른다. 가야금 연주자의 두 손을 보고 있으면, 머리카락을 보고 있으면, 양 어깨를 보고 있으면 그대로가 바로 출렁이는 파도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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