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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47회] 홍매화

기사승인 2019.12.25  05: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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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

저것은 피 뿌림이다
눈이 어두워 빛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피는 꽃
눈을 감으면 어룽대는 그림자가
체온을 남기고 간다
우리가 죄 아닌 적 있었나
함부로 나부대며 뭇치마 들추는 바람도
추한 것을 감추고자 세상을 덮는 하얀 눈도
죄 아닌 적 없으니,
선혈 낭자한 꽃잎이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것은
어찔한 사랑 때문이다
이듬해 또 뿌려질 거룩한 만개
살얼음 깨친 눈부심에 순식간 소멸될 욕망과
숙연해서 눈 뜨지 못할 동면은
붉은 죄,
지난한 겨울이 가지에 걸린 육신이라면
뼈대 세운 햇살은 나의 폐부를 찌르고 말 일이다
홍매화가 온몸으로 죄를 불사를 때
톡톡 불거지는 맥박
숨쉬고 있다고 다 살아 있는 것은 아니듯
선문답처럼 주고받는 개화에 나는,
내장을 화르르 솎아낼 수밖에.
      -저자 전선용 시 [홍매화] 전문-

전선용 시인의 시는 한 편 한 편이 읽고 나면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하다. 속도감이 있다. 남성적이고 주제에 대한 색채가 강열하다. 누군가 머뭇머뭇 못한 이야기를 구토처럼 왁왁 쏟아낸다. 그런데 아름답다. 자꾸 읽을수록 진한 맛이 우러난다.

전시인은 내가 지켜본 바로 여러 사람 속에 섞여 있지만 과묵하고 아무도 살지 않는 고도의 섬 같이 고개를 들고 항상 먼 산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환승 중입니다> 시집을 출간한 후론 조금씩 웃더니 조금 입술을 벙긋거리더니 화색이 돌고 활짝 웃기도 한다. 마치 어린이처럼. 아마 마음속에 쟁여 두었던 이야기들을 꺼내 독자들과 공유하면서 활기를 되찾지 않았나 싶다.

짐작컨대 많은 이들의 찬사와 격려가 있었으리라. 슬프고 억울해서 죄 같은 삶. 살아있는 게 굴욕 같은 삶. 그러한 아픈 기억들을 우려낸 시들이 펼쳐진다. 그렇지만 결코 흐리고 꿀꿀한 느낌 속에 읽는 이를 가두어 두지 않는다. 죄, 사랑, 숨과 맥박 등을 물음표처럼 던지고 곧 바로 명쾌한 답을 밥상처럼 차려 내민다. 시인은 그림도 특출 나게 잘 그린다. 시인의 삶도 또한 성공가도를 달려 윈! 윈 승리하게 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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