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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56회] 밥을 먹으려면

기사승인 2020.02.26  09: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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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으려면

밥을 먹으려면
오밀조밀 열여섯 정도는 되어야지
와글와글 웅성웅성 고함도 한 숟갈 얹어
먹어야 제 맛이 나지요
풀잎도 삼키는 팔순을 훌쩍 넘긴 사랑 가족
네가 옳고 내가 옳고 다른 의견을 펼치며
밥 먹어야 저절로 힘찬 기운이 올라가지요

찰진 담소로
왁자지껄 주거니 받거니
씹을수록 고소하고 단물 고여 배부른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곁에서 바라봐준다면……
     -저자 배정자 시 [밥을 먹으려면] 전문-

저자는 여럿이 와글와글 먹는 밥에 대한 그리움과 동력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를 고르고 나는 역으로 혼자 먹는 밥, 매끼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의 쓸쓸함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혼자 먹는 밥은 소리가 크게 울린다.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 긁히는 소리, 꿀꺽꿀꺽 물 넘어가는 소리들이 왜 그리 다 크게 들리는 것인지. 고요 적막강산에 망치 두드리는 산 메아리 같다.

또한 식사의 의미라기보다 연명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이라기보다 영양소를 떠올리며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넣어 만드는 단일 단순 요리를 해 먹게 된다. 혼자 먹으려고 정성들여 장식을 얹지 않을 뿐더러 대강 간만 때려 맞춘다. 밥맛이 날 리 만무하다.

거기다 티비를 크게 틀거나 노래 연설 강의에 채널을 고정시키기도 한다. 그러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람이 왜 매끼마다 먹어야 하는지 식사시간이 고역스럽기까지 하다. 우리 삶의 시간이 자는 시간 빼고 먹는 시간이 차지하는 시간이 두 번째로 길다. 둘만 모여도 식사 시간이 쾌 길어진다. 요즈음은 식당에서도 음악을 곁들이거나 그림이나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런데 저자의 시에서처럼 찰진 담소로 씹을수록 고소하고 단물이 고이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거야 말로 즐거움이다. 함께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축복 된 시간인지도 모른다. 프랑스 중세기 사람들은 점심시간부터 오후시간 모두 식사 시간이었다고 한다.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해내면서 연신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요즘은 혼자 밥 먹는 일인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수요도 늘고 있다. 나도 물고기 쿠피를 기른다. 내가 밥 때가 되어 다가가면 녀석들이 내 앞으로 모여든다. 식구처럼!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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