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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64회] 사막의 물고기

기사승인 2020.04.29  09: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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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물고기-김영철 시인의 실크로드횡단 기념전을 보고

사막을 나는 물고기가 있다

푸른 제주 바다 건너
사막의 아침을 만나러가는
불치의
손 발 없는 물고기가 있다

아직 이슬을 물고 있는 새벽별
우샤스를 만나는 한사람이 되고자

물 밖으로 배를 내어놓은 채
하늘을 나는
사막의 물고기가 있다
       -저자 강서일 시 [사막의 물고기] 전문-

‘사막의 물고기’ 강서일 시인님의 시를 읽고 까맣게 잊고 지냈던 2002년 아시아 시인대회에 참석한 일이 떠올랐다. 11일이나 중국에서 자고 먹었으면서도 글 한 줄 안 남았는데, 비록 순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기억에 오롯이 남아있는 것들이 낚시로 건져 올리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당시 한국시인협회 회장 이근배 시인님의 인솔 하에 11일 일정으로 성찬경, 범대순, 이가림, 유안진, 신달자 시인님을 위시해서 21명 인원이 참석했다. 그 때는 중국 방문이 까다로워 입국 난에 직업을 모두 ‘상인’으로 기재 되었다. 사회주의 체제하에 우리나라와 무역이 활발하지 않은 상태여서인지 한국과 중국을 드나드는 한국인과 중국인 보따리 장사가 많았던 때였다.

공항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중국가이드가 한국문인협회 환영 문구를 초서로 갈겨 쓴 피켓을 들고 나와 우리일행이 알아보질 못해 한참을 이리저리 몰려다니다 겨우 찾아냈다. 가이드를 만나 서안 비림관 옆 5성 호텔에 투숙하였다. 별 다섯 개 우수호텔이라고는 하나 썩 좋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튼 날 아시아 시인회의 모임을 갖고 난 후 서안, 비림(碑林) 비석의 숲을 돌아보고 박물관 앞에서 시 낭송을 개최하였다. 그런데 일본인들의 시 낭송은 말 그대로 퍼포먼스, 연기였다. 긴 두루마리를 펼쳐 읽는가 하면, 기모노를 입고 등장하여 우리를 기죽게 하였고, 시재의 캐릭터가 되어 무대를 누비고 다녔다. 요즘 우리도 시낭송이 화려한 잔치 향연처럼 변하고는 있지만, 그림과 말과 문자를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엔 사람의 감각기관 몰입도가 떨어지는 걸 느낀다.

또 한 가지 특이점은 일본인들의 어색한 오버액션이었다. 다른 나라 시인이 일본 단어 하나만 입에 올려도 박수치며 열광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글과 영어로 번역해 간 소책자가 전부였다. 대회인 만큼 상금도 있었다. 누가 탔는지 기억에 없다.

그날 밤 일행은 노래방에 가기로 했다. 중국 여자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어떤 허름한 건물에 들어서자 길고 좁은 통로가 이어지고 매우 어두웠다. 벽을 더듬어 짚으며 걸었고 너무나 무섭고 어디로 끌고 가는 건지 몰라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자 걸음이 느린 교수님 한 분이 “천천히 가!”라고 소리 질렀다. 어둠의 터널을 한참 지나 큰 방이 나왔고, 긴장이 풀려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여류 시인이 고산청(카오 샨 칭) 중국 노래를 불렀다. 나도 아는 노래여서 따라 불렀다.

다음 날은 병마 총을 관람했다. 얼굴 생김이 다 다르게 제작, 진시황의 인력 동원하의 고통을 읽을 수 있었다. 관람을 끝내고 경비행기를 타고 가다 다시 대절버스로 옮겨 실크로드 장정에 올랐다.

가는 길에 만리장성과 가욕관, 수십 개의 칸막이가 있고, 거의 한 개의 벽 전체에 와불상이 누워 있는 막고굴-황토 흙과 갈대를 이겨 만들어 습기와 부패에 강해 수백 년을 견딘 중국 문화재를 보았고, 곧바로 당 현종 양귀비의 욕탕, 공원화 된 욕탕 둘레를 둘러보는데 살수차가 지나다니며 관광객을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뿌려 물줄기를 피해 뛰어다녀야했다. 그리고 정말 초라한 광개토대왕 비! 서너 사람이 앉을 만한 공간의 사무실 하나, 우리나라에 모실 방법은 없는지.

드디어 모래산 명사산에 도착, 낙타타기 코스, 내게 배정된 104번 낙타를 탔다. 낙타가 걸을 때 어찌나 찌그덕거리는지 앞에 있는 봉을 꽉 잡았지만 심하게 흔들렸다. 게다가 낙타 특유의 냄새 때문에 유쾌하진 않았고, 낙타 잡이가 한사람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선지 마구 서둘렀다. 바람이 거세고 눈과 코로 모래가 날아 들어왔다. 도착지점에 일일이 개인 사진을 한 장씩 찍어 사진 값도 톡톡히 받아갔다.

돈황 명사산에 도착! 모처럼 놀이를 즐겼다. 모래바람이 심했다 뿌리 없이 공처럼 구르며 살아가는 식물이라고 하는데 가시가 있어 유아들이 가지고 노는 내부가 환히 보이는, 선으로만 이어진 오각형 공처럼 아! 까치집이나 벌집 같다. 그런 공 같은 덤불 가시 선인장 식물이 여기저기 바람에 굴러다니며 자란다는 게 신기했다. 모래 산에서 미끄럼도 타고 자꾸 무너지는 모래 산을 오르기도 하였다. 마침 이근배 대표님의 모래 미끄럼 시범으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긴 장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집이 가까워지자 잠깐 내가 접이식(2000년 구형)휴대폰을 막 켰는데 중국 여승무원이 다가와 다짜고짜 낚아챘다. 깜짝 놀라 나도 얼른 빼앗았다. 안 그러면 다시 되돌려 받기 어렵다 했다. 사회주의 대국(때국)의 불친절의 왕녀야! 그래~ 불편한 자유의 목마름도 이제 끝이다.

강서일 시인님의 시 한편이 20여 년 전 기억을 단 번에 떠올리게 하여 참 고맙다. 강 시인님과도 좋은 추억 쌓기와 좋은 시로 만나길 빌어본다. 더 세세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겠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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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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