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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2회] “아버지! 걱정 마세요. 다 잘 될 거예요.”

기사승인 2020.09.22  08: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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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과 사 경계선 같았던 수술실 출입문에서의 아들 웃음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쌀 한 톨만 한 것을 물고 가는 개미를 지켜봅니다.
초가을 햇볕이 바른 암병원 푸른동산의 나무벤치에 앉았다가 새까만 개미에게 홀려 숨을 죽였습니다. 나뭇잎도 풀잎도 아닌, 어쩌면 어느 암환자가 입맛 찾으려다가 흘린 수리취떡 조각일는지 모릅니다.

혼자 나르기에 벅찬 듯 나뒹굴기도 하는 저 일개미에게서 숭고한 가족 사랑을 떠올렸다면 너무 생뚱맞은 비약일까요? 여하튼…십 수년째의 암투병으로 가족을 돌보지 못하는 절망감에 개미의 악착스러운 일손이 마냥 부럽습니다.

건강하다면 가족을 위해 일할 시간인데 암병원 푸른동산에서 개미를 시샘합니다. 진료예약 일정을 착각하는 바람에 허둥지둥 달려와 여명 전 여섯 시 반에 식전 채혈부터 했습니다. 다시 한 시간 반 후 식후 채혈 후 오전 11시 반 진료 받아야 할 시각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췌장암 재발로 또 40%를 절제해 30%밖에 남지 않은 저에게 혈당관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단순히 당뇨합병증 예방의 관리가 아니므로 ‘내분비대사내과분과’ 진료 받는 날은 주치의를 만날 때까지 암 첫 수술처럼 초긴장입니다.

오전 11시 반.
이 시각까지 환자대기실에 있기 싫어 푸른동산에서 악착스러운 개미의 가족사랑 일손을 시샘하다가 2008년 1월 15일 첫 췌장암 수술하던 날의 아들 웃음을 떠올렸습니다.

수술실 출입문에서의 이별은 아주 짧았습니다.
말없이 잡았다가 놓는 손과 마주보는 눈길, 그 끝에 아들은 웃었습니다.

아들의 웃음은 너무나 어색했습니다.
차마 울음을 터뜨리지 못하고 보일 듯 말듯 지은 웃음이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나 삼십 초반의 아들 그 웃음에서 묵언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버지! 걱정 마세요. 다 잘 될 거예요.”

‘경계선 입구에서’는 수술 회복 후 쓴 시(詩)입니다. 생과 사의 경계선 같았던 수술실 출입문은 안타깝게도 일 년에 한두 차례 꿈에 나타나 놀라곤 합니다.

‘경계선 입구에서’

수술 준비실 입구에서
불안으로 어쩔 줄 모르는 아들에게
쪽지 건네주며 당부한다

잘못돼도 소생시키지 마라
장례는 쪽지의 컴퓨터 주소대로 해라

유언 아닌 부탁으로
아들의 손을 잡으며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 입구
수술실 입구를 쳐다본다

환자보호자는
회복대기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문
어서 가라는 손짓으로
이승에서 마지막일지 모르는
얼굴을 본다

차마 아버지 앞에서
눈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들
어색한 미소에 마주 웃는다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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