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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4회] 저 사람들이 의사라고…천하의 독종들인데

기사승인 2020.10.06  00: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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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인 입원실의 화장실에서 쿡쿡거리던 얼굴 보았으면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암 절제 수술 후였습니다.
하루 세끼 중 죽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주치의는 매일 오전오후 회진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물었습니다. 방귀를 뀌었느냐고. 방귀란 음식물이 뱃속에서 발효될 때 생겨 항문으로 나오는 구린내의 무색 기체 아닙니까.

힘들어도 걸어야 해요.
누워만 있으면 방귀가 안 나와요.

주치의 눈길을 외면합니다.
그만 잔소리하고 빨리 다른 환자나 회진하라는 무언의 항의를 눈치 채지 못한 주치의가 인자한 웃음에 고개까지 끄떡이며 덧붙입니다. 방귀를 뀌면 간호사에게 꼭 말하세요.

우르르 몰려나가는 회진 팀을 향해 옆 병상의 환자가 표정을 한껏 찡그리며 진저리쳤습니다. 저 사람들 의사 아니에요. 이 늙은이를 일주일씩이나 굶겼지 뭡니까. 물 한 모금도 주지 않고. 천하에 둘도 없는 독종들! 옆 환자의 독설에 깜짝 놀랐습니다.

일주일씩이나?
사실 열흘 굶어도 배고픈 거 느끼지 못할 겁니다. 뿔대에 주렁주렁 매달려 투약되는 약 중 어느 것 하나는 영양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목숨 살리는 곳이 병원인데 그냥 무대책으로 방귀 뀌기를 기다릴 리 만무지요.

그러나 회진 때마다 의사의, 입원실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묻는 간호사의 표정과 목소리 변화에 예민해졌습니다. 수술 다음날은 아예 묻지 않았습니다. 이틀째부터 약 먹을 때마다 묻던 목소리가 나흘째로 접어들면서 달라졌습니다. 대답의 반응도 ‘아! 그래요. 곧 뀔 거예요’ 느긋함에서 ‘느끼지 못한 거 아니에요?’ 추궁하는 듯 했으니까요.

여하튼 췌장암 수술과 방귀의 역학관계가 이렇게 무겁다니 신기하면서도 두려웠습니다. 단순히 치료과정의 에피소드 정도로 간주하며 죽조차 안 준다고 투덜거렸는데 실제 상황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장 유착으로 방귀를 뀌지 못해 수술한다면? 그것은 상상만으로 끔찍했습니다.

그날 밤, 방구를 뀌지 못해 수술실로 끌려가는 꿈까지 꾼 것으로 보아 무척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오일 째의 밤늦은 관장에 6인 입원실 화장실에서 줄방귀를 뀌며 쿡쿡 웃었습니다.

그날의 쿡쿡거리던 저의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그 얼굴 볼 수 없을까

수술 후 나흘째
방귀가 안 나왔다고 죽도 없다

주치의 회진도
마지막 질문은 방귀

그까짓 방귀가 무엇이라고
암 중증환자를 굶기느냐 따지려다
외면한다

이미 수차례 들은
수술 후유증으로 장이 유착(癒着)되면
또 개복해야 된다는
인턴의 설명만 원망스럽다

오일 째 오후 회진 후
항문 관장약 투입의 불쾌감이 가시기 전
밀려오는 아랫배 통증으로 화장실에 쪼그려 앉자
터지는 방귀

그 순간 살았다는
늙은이의 가슴 쓸어내리던 웃음
그 얼굴 볼 수 없을까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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