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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6회] 암환자와 의사, 우린 서로 신뢰하는 ‘전우’

기사승인 2020.10.20  00: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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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치의 표정에 일희일비 눈치 보는 진료 정말 싫어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정병☓’
이름 석 자(字) 중 ‘국’ 자가 ☓로 표시된 진료순서 전광판을 주시합니다. 내 이름 위로 두 명의 환자가 있으니 아무리 늦어도 3~4분 후, 빠르면 2분도 안 돼 주치의를 대면할 것입니다.

가슴의 두근거림이 빨라집니다. 괜찮아. 별일 없어. 애써 긴장을 밀어내면 낼수록 머리까지 터질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2번 진료실 쪽으로 다가갔다가 진료를 포기하고 아예 병원을 나가고 싶어 진저리칩니다.

환자대기실은 장기 절제와 이식수술실보다 더 긴장됩니다. 수술실은 전신마취에 초조와 불안이 찰나로 사라지지만, 환자대기실은 잔인한 고문공간입니다. 간호사가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 병세 악화의 예감에 온몸이 파삭 부서지는 통증을 느낍니다.

“잘 하고 있어요. 이대로 갑시다.”

지난번의 진료에서 주치의는 투병을 잘 하고 있다며 칭찬까지 했는데도 췌장암 재발에 이곳저곳 전이된 상상의 고통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이 고통은 바로 죽음의 공포입니다.

죽음의 공포는 주치의와 마주하는 순간 사라지기도 하고, 더 짙어지기도 합니다. 환부 검사 자료의 모니터를 살피는 주치의 표정이 밝으면 금방 화색이 돕니다. 그러나 눈길이 심각하면 ‘아! 악화됐구나.’ 충격의 공황에서 주치의 말을 기다립니다. 그 순간은 염라대왕 앞에 무릎 꿇고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이 됩니다.

주치의 표정에,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진료가 정말 싫었습니다. 그렇다고 진료받기를 거부할 수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 속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마침내 하나의 길을 찾았습니다. 저는 그 길을 지금도 신의 한 수라고 자찬합니다.

만사여의(萬事如意). 혈종유방암의 목공예 여류작가에게 선물한 작은 종에 새겨진 글귀입니다. ‘걱정하지 마요. 소원대로 완치될 테니까.’ 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말을 저 자신에게 거듭거듭 했습니다.

이제는 주치의 표정을 살피지 않습니다. 진료실로 들어서면서 늘 먼저 웃습니다. 검사 결과가 기대치에 못 미쳐도 실망하지 않고 보다 더 열심히 투병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입니다. 그 결과 마침내 암환자와 의사,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는 ‘전우’가 됐습니다.

2019년 1월 30일 췌장암 재발에 전이된 위와 담낭, 십이지장을 다 자르는 대수술을 받았으나 ‘전우의 신뢰’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완치 고지로 전진합니다.

‘일희일비(一喜一悲)’

환자 진료대기실
뒷줄 구석 자리에 앉아
전광판의 진료순서가 앞당겨질수록
숨죽인다

새벽같이 채혈하고
췌장암 수술 자리 CT 촬영 후
세 시간째 기다리는 진료

이러한 날이
한두 번 아니거늘
오늘은 불안한 마음이 태산이다

차라리 포기하고
어느 산 깊은 계곡의 바위에
눕고 싶은 초조감

컴퓨터의 진료차트를 보며
주치의가 웃거나 심각한 표정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내가 싫다
그냥 운명만큼 살면 안 될까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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