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47

[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8회] 아들의 도가니수육과 탕을 기다리며

기사승인 2020.11.03  01:18:11

공유
default_news_ad1

- 아빠! 어떡하지? 도가니탕인데 반주가 없으니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수육이 부드럽고 담백해요.”
늦은 저녁을 먹으려다가 주춤 멈춥니다. 요즘 통 입맛이 없어 식탁의 음식들이 못마땅했는데 수육이라는 아들의 전화에 수저를 내려놓습니다. 암환자가 입맛 어쩌고저쩌고 투덜거리는 것은, 그것도 항암제 복용에 항암주사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는 환자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닙니다.

방금 마신 따뜻한 물이 갈증을 풀어줍니다. 다시 한 모금 마시려다 토악질하며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끌어안습니다. 똑같은 물맛도 한순간 극과 극으로 뒤집혀 견뎌낼 수 없는 고통에 폭삭 부서지는 게 바로 항암치료 암환자이니까요.

“수육?”
“예! 한우 도가니 수육 좋아하시잖아요?”
“글쎄다……?”
“탕도 사갈게요.”

아들은 수육과 탕이 식기 전에 귀가할 겁니다.
식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식재를 하나 둘 헤아려봅니다. 시금치, 더덕, 도라지, 가지, 애호박, 두부, 아욱, 새송이와 느타리버섯, 달걀, 고등어, 멸치, 마늘, 양파 등 가짓수를 헤아리다가 그만 잊어버립니다. 모두 항암 효과 있다는, 대부분 재래식 된장에 무치거나 끓였고 찜을 한 반찬들은 철저하게 저염(抵鹽)입니다.

참 많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많은 반찬 중에 입맛당기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항암 식이요법의 반찬이라 부지런히 젓가락이 갈만도 한데 아닙니다. 내 손으로 장을 보고, 자신 있게 만든 반찬까지 시큰둥합니다.

나름대로 솜씨 있는 손맛입니다. 만 13년 전부터 암과의 사투를 벌이는 동안 웬만한 항암식단은 제 손으로 꾸려냈고, 간밤에도 한밤중에 원고를 쓰다가 건강간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자꾸만 회의적인 생각에 눈살만 찌푸려집니다.

뭐랄까? 이렇게 먹는다고 과연 재발한 췌장암에 전이된 소화기관 여기저기를 다 절제한 껍질뿐인 목숨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부정의 무게로 자리에 눕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곧 도가니수육과 탕을 들고 귀가하므로 거실만 서성거립니다. 문득 2008년 1월 말쯤의 입원실 점심식단이 생각납니다. 그날,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에게 자랑했던 점심이 바로 도가니탕입니다. 서둘러 지난해 12월 초 출간한 저의 암투병 시집 ‘새 생명의 동행’의 19쪽을 펼칩니다.

아들도 딸처럼 놀리면 어떤 대답으로 아버지의 위엄을 세울까, 궁리하다 허허 웃습니다. 메슥거리던 속이 어느 새 진정되고 은근히 수육과 탕의 입맛이 기대됩니다. 어쩌면 오늘의 밤늦은 저녁에서 오랜 만에 포만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내일 점심은 도가니탕’

갈비탕과 도가니탕 중 선택하세요
저염(低塩) 음식에 지쳤는데
간호사는 메시아

내일 점심은 도가니탕이야
복도를 함께 걷는 딸에게 자랑하자
쿡쿡 웃는다

아빠 어떡해
뭐가
도가니탕에 반주가 없으니
너 정말

딸아이의 놀림에
새삼 아프기 전 지난날을 돌아본다

술은 빈속의 짜릿한 맛으로
담배는 새벽 눈뜨자마자 피웠으니
몸이 오죽했을까

결국 췌장과 갑상선샘 암으로
이어질 수밖에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73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