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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9회] 암과의 동행으로 새 생명 탄생

기사승인 2020.11.10  02: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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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뜨거운 눈물로 죽음을 갈망하기도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어둠이 벗겨지는 여명의 시각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찰나입니다.
아들이 미리 예열해놓은 따뜻한 등받이와 의자에 앉아 잠시 승용차 앞의 풍경을 바라다봅니다. 이미 단풍과 낙엽으로 어우러진 시월 중순의 가로수가 묵언의 아침인사를 하는 것 같아 살짝 미소 짓습니다.

토요일의 도로는 한산합니다. 과천을 빠져나와 그 유명한 교통체증의 양재IC와 기아자동차 사옥 옆 도로도 뻥 뚫려 이 속도라면 곧 삼성서울병원에 도착할 겁니다. 정말 오랜만의 막힘없는 쾌속입니다.

“그때 왜 그렇게 결정하셨어요?”
염곡동 지하도를 빠져나가면서 뜬금없이 묻는 아들의 얼굴을 힐끔 쳐다본 후 코로나19 방역 마스크를 고쳐 씁니다. 왜 그렇게 결정했느냐고? 2008년 1월 암 병동 입원실로 돌아갑니다. 중증암환자들은 대부분 산속 요양을 선택했지만, 저는 그 반대의 일상생활을 유지키로 했습니다.

폐업하려던 출판사를 저 한 사람, 1인 회사로 전환했습니다. 어차피 죽으면 산으로 돌아갈 거 미리 갈 필요 없다는 오기도 있었지만, 살아 있는 동안 삶의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장편소설 ‘북경의 황사바람’을 마무리 짓고 싶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북경에 머무르며 쓰기 시작한 ‘북경의 황사바람’ 외 그동안 틈틈이 발표한 단편소설과 수필 등 서너 권 분량의 작품을 책으로 엮은 후 떠나고 싶었습니다. 몇 년 더 살려는 얄팍한 흉계라고 지독하게 욕먹어도 감지덕지할 만큼 간절했습니다.

“그때 엄마와 동생이랑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세요?”
물론 짐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아예 가족 누구도 반대의사를 입 밖으로 내지 못 하도록 선포했습니다. 심산유곡 산속으로 가지 않는 것은 살기 위해서다. 췌장암은 절체절명의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삶의 시작인 이 소중한 기회를 헛되지 않게 할 테니 불안해하지 마라.

가족들은 늘 불안한 눈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강하게 선포한 집념에 감히 다시 생각해보자는 눈치조차 보이지 못했습니다. 마치 살얼음의 깊은 강을 건너가듯 좌불안석이었지만, 모르는 척 외면했습니다. 2007년 가을, 인터넷문학카페와의 후원 약속대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창간 작업에 온힘을 쏟았습니다.

2008년 3월 1일, 마침내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호질’에서 창간호 발행 출판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지인들이 미쳐도 더럽게 미쳤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축하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문학과 췌장암’은 ‘새 생명의 동행, 길동무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 그만 ‘암과의 동행’을 접고 싶었습니다.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을 만큼 지쳐 누워 있다가 흐르는 뜨거운 눈물로 차라리 죽음을 갈망했습니다. 한순간에 온몸이 가루로 후르르 휘날리며 사라지기를 기도하고 또 했습니다.

절망과 간절한 소망의 충돌 속에 백수(白壽)가 내일모FP인 아버지와의 추억 ‘귀가 머니 세상이 조용해서 좋구나’ 시를 닮은 에세이집을 시작으로 작품집이 한 권, 두 권 출간됐습니다. 장편소설집 ‘강(江)’ ‘이혼의 진실’에 이어 단편소설집 ‘타인의 방’ ‘제3의 결혼’, 암 투병 시집 ‘새 생명의 동행’ 등 순수문학 작품집을 쏟아냈습니다.

올 연말 안으로 산문집과 중ㆍ단편소설집을 각각 출간할 계획입니다. 두 권 모두 퇴고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월간 현대양계, 골프타임즈 등 언론지에 연재한 콩트, 성풍자 소설, 칼럼 등 서너 권의 책으로 엮을 원고도 틈틈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췌장암 등 암투성이의 몸에 지레 겁먹고 산속으로 들어갔다면……? 지난 10월 초 출간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2020년 가을호(통권 제51호)는 애당초 창간도 못했을 겁니다. 10년차의 문예창작아카데미 운영 역시 꿈조차 꾸지 못했을 겁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에게 감사의 당부를 합니다.
당신의 무모하리만큼 어리석은 집념이 새 생명을 탄생시켰습니다. 앞으로 더 큰 의지로 세상의 모든 암환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세요.

‘불치(不治)에의 도전’

꼭 산속으로 가야 하는가
그래야 암을 이겨낼 수 있는가
췌장암은 수술해도 몇 개월 못 넘긴다는데

왜 하필 나인가
이런 끔찍한 병으로 죽게 하는가
묻고 또 묻다 허허 터진 웃음
죽을 때 죽더라도
췌장암의 벗이 되자는 미친 생각에
눈물이 난다

수술한 지 삼일 만에
시작한 췌장암과의 첫 데이트
불치에의 도전에 희망을 걸고 내민 손
처내는 눈빛이 서릿발이다

오늘은 첫 날이니
나란히 걷는 것만으로 웃음 지며
내일을 기도한다
우리는 결국 친구가 될 걸세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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