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47

[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11회] “어르신! 핏줄이 젊은 사람 같아요”

기사승인 2020.11.24  00:39:10

공유
default_news_ad1

- 2.5배 치솟은 복용 용량은 ‘불안한 상상의 광장’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늙어서도 심성이 곱지 못해 그럴까요?
통원치료에서의 채혈은 가장 기본적인 검사인 줄 잘 알면서도 매번 투덜거립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피를 뽑겠다는 거야? 이러다가 피 한 방울 없는 미라로 쓰러지면서 파삭 부서지겠다. 애꿎은 간호사에게 눈 흘김을 뽀얗게 던집니다.

이번에는 췌장 때문에….
그리고 이번에는 갑상선샘 때문에, 혈당 때문에, 때문으로 이어지는 채혈은 시작도 끝도 없는 미로 같습니다. 호롱으로 빨려 들어가는 피를 바라보는 순간 솜털까지 파르르 떠는 긴장에 휘말리며 채혈 검사 결과를 ‘병세 악화’로 지레 겁부터 먹습니다.

암 환자에게 ‘채혈’은 임계선(臨界線)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암 의학 지식이 부족한 환자에게 채혈은 ‘병세 호전’ ‘병세 악화’ 두 상황 중 하나의 진단입니다. 안타깝게도 좋아졌을 거라는 긍정보다 매번 악화됐으면 어떻게 하지, 예단의 불안으로 주치의의 진료를 받을 때까지 전전긍긍입니다.

오늘은 갑상선샘 때문에 채혈합니다.
2008년 1월 갑상선샘을 100% 절제한 후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이의 적정량 복용인지 확인한 후 새 처방을 받게 됩니다. 용량의 표기단위를 정확히 모르지만, 100에서 150으로, 다시 150에서 200으로, 200에서 250까지 높아지는 용량에 몇 개월 동안 초조와 불안에의 침몰이었습니다.

원래는 당일 채혈로 검사 결과의 진료일정이지만, 삼일 전에 병원을 찾았습니다. 왜 자꾸만 복용 용량이 높아지지,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해 아들과 동행했습니다. 장기 암 투병으로 입원 수술 외의 진료는 혼자서도 거뜬히 하는데 오늘은 간단한 채혈조차 불안해 아들을 대동했습니다.

7~8개월 사이 2.5배까지 치솟은 복용 용량은 ‘온갖 불안 상상의 광장’이었습니다. 수시로 인터넷을 들락거리며 갑상선샘 암에서부터 기능에 이르기까지 마치 관련 검색어를 처대는가 하면 서점에 들려 관련 책들을 살펴보기 예사였습니다.

인터넷과 책, 암환자 카페 등 그 많은 정보 어느 것도 불안한 마음을 해소해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불안한 머리와 가슴에 혼란만 가중시켜 그 스트레스로 빈혈까지 발동시켜 드러눕게 했습니다.

결국 진료 일정을 기다리지 못하고 새벽같이 달려와 채혈했습니다. 병원 식당의 제과점 코너에서 빵과 커피를 찔끔찔끔 맛보다가 그만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때마침 아들이 앞자리에 없어 다행이었지만, 좌불안석의 저 자신이 한심하다 못해 불쌍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약만 잘 복용하면 큰 문제없다는 의사의 말을 믿지 못하고 허둥거리는 저 자신이 민망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췌장암 재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갑상선샘 호르몬제 복용을 가지고 요란 떤다고 여러 차례 머릴 쥐어박았습니다.

“머리 아프세요?”
어느새 돌아왔는지 아들이 앞자리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재빨리 아니라고 대답한 후 너 아침 먹어야지, 밥 타령을 합니다. 아들은 아침을 먹지 않습니다. 물 한 컵으로 기상의 시원함을 챙기는 아들인지라 아침을 함께 한 기억이 까마득합니다.

“잘 하고 계시니까 결과도 좋을 거예요.”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오후 4시, 주치의도 상황이 좋아졌으니 용량을 줄여 처방할 겁니다. 더군다나 채혈할 때 간호사가 분명 말했습니다. 이마가 반듯하고 눈썹이 짙은, 눈웃음이 참 따뜻한 채혈 간호사였습니다.

“어르신! 핏줄이 젊은 사람 같아요. 환자가 아니세요.”

‘채혈실의 미소’

아침 일곱 시
환자들로 가득한 채혈실
대기번호 3577 차례가 되려면
50명이 지나가야 한다

마침내 왼쪽 팔 핏줄
따끔할 사이도 없이 주사바늘로
빨려나가는 붉은 피
일곱 개의 대롱도 부족했나
한 개를 더 채운다

어르신 핏줄이
심장이 젊은 사람같아요
환자가 아니세요

주사바늘 꽂혔던 자리
소독가제로 덮어주며 미소 짓는 간호사
삼분 동안 꼭 눌러주세요
비비지 말고요

일어서는 가슴
잠시 중증암환자임을 잊는다
천사 간호사의 말 한마디에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73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