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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향의 다듬이 소리 12회] 한 줄 시를 얻는 시인의 고독

기사승인 2020.11.30  00: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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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워서 쓴 낙서는 삶의 진실 고백

[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비 오는 날의 달력을 쳐다보면 힘없는 숫자들이 흐느적거리며 쏟아져 내린다. 빗물보다 더 젖은 모습으로 희망이 없다고 주저앉을 때 숫자들이 온몸으로 속삭인다. 오늘이 인생의 최고의 날이고, 지금보다 다 나은 최선은 없다고.

이 비가 그치면 만추는 끝날 것이고, 커피색 재즈가 흐르던 낡은 카페의 문도 닫힐 것이다. 만추의 마지막 남은 단풍이 당장 빠져 죽어도 좋을 노을의 주홍빛으로 나를 흔적 없이 발라먹어도 오늘은 슬프지 않을 것이다. 빛나는 시어가 튀어나올 때까지 나도 그 붉은 유혹의 빛을 빨고 또 빨 것이므로.

마지막 안녕을 고하는 가을의 인사조차 허공 속의 메아리일지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인 나부랭이일지라도 아무 일 없이 산다는 건 서글픈 일이기에 그 흔한 시 한 구절 쓰는 일이 소중한 인생으로 다가온다. 그 인생에는 무엇인가 있을 것 같아서 오늘도 낙서한다.

고독한 천재 시인 이상은 어디에 발표하겠다고 벼르며 시를 쓰지 않았다. 가장 외로울 때, 가장 외로운 시간에 낙서하듯이 시를 썼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쓴 낙서들, 이상 자신도 ‘시’라고 생각하지 않은 낙서들이 세인들에게는 시가 됐다. 그렇다면 낙서야말로 시의 본질을 가장 잘 내포한 게 아닐까.

낙서는 고독을 고백하는 가장 솔직한 행동이다. 아무런 의미나 연결 고리 없이 진실을 경멸하는 가혹한 독백, 시인들은 그 낙서에서 한 줄의 시를 얻는다. 그 한 줄의 시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납득할 만한 논리가 아니라고 해도 삶의 진실이므로 오늘도 질주한다.

인간은 누구랄 것도 없이 이름 남기기를 원한다. 나는 사라져도 이름만은 영원히 존재하기를 갈망하는 게 인간이다. 심지어 파도가 휩쓰는 백사장이든, 산 정상의 바위이든, 나무껍질에까지 이름을 새기지 않는가. 영웅호걸도 아닌데 굳이 영원히 자기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어리석음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름보다 시로 남기를 갈망하는 시인의 낙서는 삶의 진실이므로 세상이 헤아려주지 않아도 끝없이 이어진다. 때로는 아무런 의미 없는 낙서가 흐린 날의 건조한 영화 같아도 그것은 외로움의 절정. 오늘도 그 절정에 불을 지르는 커피를 내린다. 심장이 녹는 뜨거운 온도로.

주홍빛 노을이 색기(色氣)를 발하며 유혹의 입김을 불어댈 때
정신의 한 부위를 분분히 춤추게 하는 시의 카타르시스…박소향

시인 박소향
한국문인협회과 과천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와수상문학 사무국장과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박소향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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