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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14회] 그날 속수무책으로 터진 뜨거운 눈물

기사승인 2020.12.15  01: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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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곁에는 첫 번째 명의(名醫)가 참 많습니다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항암식단의 늦은 점심을 먹다가 거실에 드러누웠습니다.
천정의 형광등을 쳐다보는 두 눈에서 느닷없이 눈물이 주르르 흐릅니다. 앞뒤 상황 없이 터진 뜨거운 눈물에 속수무책으로 누워 있다가 키득키득 웃습니다. 칠십 중반의 노인이 밥 먹다가 큰 대(大) 자로 누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웃다니 더럭 겁이 났습니다.

급성 치매?
정말 그렇다면?

십 수 년의 암 투병 후유증으로 급성 치매가 왔다면? 상상만으로도 몸서리 처지는 끔찍한 일이라 벌떡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한참 동안 더운 물을 뒤집어썼습니다. 숨이 막힐 만큼 당황했던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거울 속의 얼굴에 물었습니다.

아니지?
늙고 아프니까 슬퍼서 울었지?
그게 한심해서 터진 웃음이고……아닌가?

다시 점심 식탁에 앉았습니다.
짠 반찬 하나 없는 항암식단을 차례차례 살펴보며 가짓수까지 헤아립니다. 가지무침 하나, 더덕구이 둘, 고등어 반 토막 셋…청국장 등 자그마치 열여섯 찬과 미역국의 현미잡곡밥 앞에서 하도 기가 차 수저를 들지 못했습니다. 이건 암환자의 식이요법이 아니라 수라상조차 민망할 진수성찬이었습니다.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위와 십이지장, 담낭이 없는, 췌장도 삼분지 일밖에 없는 ‘다종 중증암환자’의 한 끼 식사량은 정상인의 반의반도 안 됩니다. 아무리 탁월한 소화 촉진제를 복용해도 한 끼의 양은 한계가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항암제 복용과 주사 치료가 끝나도 구토 등의 후유증에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시달립니다.

다시 하나둘 헤아리다가 고개를 숙입니다. 식단의 대부분이 제 손으로 장을 보고, 만들었다는 사실에 뿌듯함보다 가슴이 아렸습니다. 평소 알았던 항암 음식 상식에 공중파 방송이든 신문의 항암 뉴스에 거론된 식자재들을 사다가 되지도 않은 솜씨를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암 투병의 지난 세월, 항암 채소 등을 찾아서 장 보던 저를 떠올립니다. 메모지에 적힌 식자재를 살 때마다 기대했을 췌장암 등 여러 암으로부터 대탈출-. 서툰 솜씨로 데치고, 무치고, 끓이며 마치 이제는 암과의 사투도 끝이다, 라고 수만 번 되뇌던 모습도 실루엣처럼 다가옵니다.

스스로 장을 보고, 음식 만드는 항암 투병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할 좋은 방법입니다. 문제는 항암 치료의 허황된 욕심입니다. 저 역시 그 욕심으로 수십 가지 항암식단을 매끼 차린 것입니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은 이해되지만, 이것은 아닙니다.

옛 조상님들은 삼대 명의 중 두 번째 명의를 한약과 침이 아닌 식이요법 처방의 한의(韓醫師)를 꼽았습니다. 물론 과욕불과(過慾不過)의 식이요법이 근간이었습니다. 역시 첫 번째 명의는 심의요법이었고요,

그러고 보니 저의 주변에는 첫째 명의가 참 많습니다. 친구들은 문병을 와 “다 죽어가는 줄 알았는데 멀쩡하구먼. 그래! 빨리 툭툭 털고 일어나라. 소주나 한잔하게.” 혹은 문자로 “늙어서 꾀병 부리나? 미친놈! 쏘가리 매운탕 끓여놓을 테니 냉큼 와라.” 호통칩니다.

선후배, 지인들도 문병으로, 전화로, 문자로 ‘쾌유’를 기도합니다. 그 기도 또한 심의요법의 하나임을 이제 깨달아 고개를 끄떡이며 빙그레 웃습니다. 친구와 선후배, 지인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는 한 저는 암으로부터 오히려 한 아름 챙길 것입니다. 고통과 절망이 아닌 새 생명의 기쁨을!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의 은혜
그 사랑으로 완쾌하여
새 생명의 행복을 누리세요

자비의 부처님이
보이지 않는 손길로
쾌유의 기쁨을 드릴 것입니다

젠장
겁먹을 거 없어
그냥 당신의 의지로 버텨
그게 최선이야

문병 오거나
전화로 위로하며 희망 주는
목소리마다의 간절한 기원에
빙그레 웃습니다

입원실 밖 파라솔 탁자에
쪼개놓은 살구
노란 속살에 내려앉는 하얀 나비
어머니가 오셨나봅니다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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