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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편지 박원명화 제1회] 살아 있음의 시간

기사승인 2020.12.16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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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에는 거창한 소망보다 평범한 일상을 알뜰히 채워가기를

[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12월로 접어들면서 연말연시 분위기가 슬슬 풍겨나기 시작합니다. 시간의 무게와 부피를 새삼 실감하며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봅니다. 바쁘고 정신없이 살적에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조차 모르고 지내다 한 해의 종점에 이르러서야 허망하게 보낸 날을 아까워하며 후회하고 반성을 하다 보니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연말연시니, 망년회니, 송년회를 갖는 것도 어쩌면 울적하고 쓸쓸한 허무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겨울이 무르익어갑니다. 아침부터 축 처진 회색구름에서는 금방이라도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릴 것만 같습니다. 길을 걷는 사람들마다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 종종걸음입니다. 겨울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흰 눈의 낭만이 반가우면서도 빙판길을 생각하면 겁부터 납니다.

창문너머 찬바람이 휘리리릭 지날 때마다 잎새 하나 없는 목련나무 가지가 와다닥 춥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가여운지 창문을 열어 집안의 따뜻한 훈기라도 보내주고 싶어집니다. 가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디마디에 새끼손톱만한 겨울눈(冬芽)이 보송보송한 털옷을 입고 앙증맞게 매달려 있습니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겨울눈을 형성해 놓고 찬란한 봄을 기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가고 찬란한 봄이 오면 등불 같은 화사한 꽃으로 피어날 저들처럼 나도 희망찬 새해를 맞으려면 올 한해 미루어 온 것들을 말끔히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러는 이루지 못한 것도 있고, 미련처럼 아쉬운 것도 많지만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도 살아있는 자의 도리이지 싶습니다.

날마다 맞는 오늘은 내가 살아가는 실체의 시간입니다. 한해가 가고나면 또 다른 한해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새롭게 맞은 한해 역시 또 언젠가 사라져 갈 날입니다. 내 몫의 할당된 오늘을 기쁘게 사는 것도, 슬프게 사는 것도 어쩌면 내가 만들어가는 삶의 성적표가 아닐까요.

살아있음의 시간은 그 어떤 보물보다 귀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황금, 소금, 지금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지금'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처럼 새해에는 거창한 소망보다는 날마다 주어지는 평범한 일상을 알뜰히 채워가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수필가 박원명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

박원명화 수필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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