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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17회] 2021년 새해의 첫 출근길과 노인

기사승인 2021.01.05  11: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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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이 있다면 ‘완치의 희망’도 분명 존재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신축년(辛丑年) 새해 첫 출근입니다.
2021년의 인사가 만만치 않습니다. 코로나19 감염 바이러스의 무차별 공세로 지칠 대로 지친 모두에게 영하의 강추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영락없이 혹한(酷寒)의 투망에 갇혀 숨도 못 쉬는 상황이지만, 애써 재촉한 출근길입니다.

말인즉 서두른 출근길이지 실상은 정오가 코앞이었습니다.
코로나19의 방역조치 2.5단계가 아니어도 43kg의 암 투병 몸으로는 젊은이처럼 일찍 집을 나설 수가 없습니다. 한여름에도 전철의 승객이 적은 시간대에 움직였습니다. 그 시간대가 바로 출근은 정오와 오후 1시, 퇴근은 오후 4시와 5시 사이가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발 췌장암 등 여러 암 투병 환자이므로 면역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사람이 많은 곳은 무조건 피하는 건 칠십 초반의 암 환자로서는 당연한 선택입니다. 혹 감기에 전염되어 폐렴으로 진행된다면 현대의학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전 세계인을 벌벌 떨게 하는 코로나19 앞에서 어찌 자만하겠습니까.

“어디까지 가나요?”
지하철 객실, 노약자석의 한 사람 자리를 비운 출입문 쪽 노인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을 건네옵니다. 귀마개까지 붙은 짙은 밤새 모자의 노인은 하얀 마스크를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눈치로 보아 나도 마스크를 쓴다. 그러나 지금은 인중이 근질거려 잠시 벗었을 뿐이니 몰상식한 노인으로 보지 말라는 무언의 방어 자세였습니다.

“이제는 갈 곳도 마땅치 않아요.”
노인의 말에 그럼 책을 읽는 게 어떠냐는 배려로 배낭가방 속 ‘정병국 암 투병 시집’ 한 권을 꺼내주려다가 포기합니다. 대신 건강한 몸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자셔 참 좋겠다는 정초의 덕담에 아주 만족한 표정입니다.

“내일은 천안의 순대국밥이나 하렵니다.”
생각 있으면 동행하자는 말에 배낭가방에서 마스크 하나를 꺼내어 불쑥 건넵니다. 노인은 주춤 망설이다가 들고 있던 마스크를 쓴 후 허허 웃으며 받았습니다.

출판사에 도착, 컴퓨터를 켜며 지하철의 그 노인이 물은 ‘어디까지 가나’에 ‘출근 중’이라고 대답하지 않은 것은 참 다행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누구는 출근하는데 당신은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다가 때나 채우는 ‘식충이 노인’이라고 2021년 정초부터 자신을 타박하게 했다면 어쨌나 싶었습니다.

또 ‘정병국 암 투병 시집’도 안 주기를 잘 했습니다.
건강한 노인에게 암 환자의 투병기로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너무도 큰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2021년 신축년에는 암 투병기 시집 기증을 암 환자 외에는 삼가렵니다.

‘암은 끝내 죽음에 이르는 절체절명의 올가미’가 아니라는 ‘희망과 용기’를 암 환자들과 나눌 것입니다. ‘암’이 있다면 ‘완치의 희망’도 분명 존재함을 알릴 것입니다. 문득 ‘하얀 마스크’ 시가 생각이 나 글 끄트머리에 담습니다.

하얀 마스크

지하철 객실 노약자석
옆자리의 노인이 넌지시 묻습니다
답답하지 안 나요

못 들은 척 하자
민망했던지 헛기침하다가
당신도 손가방에서 하얀 마스크를 꺼내어
슬그머니 착용합니다

그 모습에
웃음 참으며 귓속말을 합니다
항암치료 환자에게 찬바람은 고문이랍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노인
다음 역에서 내리자 콧물을 닦으며
찬바람이 나오는 풍구를 쳐다봅니다

냉장고의 반찬 유리그릇을
맨손으로 꺼내다가 깨트렸을 때
순식간에 밀려온
손가락 마디마디 난도질당하는 고통
그 노인은 짐작이나 할까요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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