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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19회] 지하철에서 만난 대장암 환자

기사승인 2021.01.19  00: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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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어디긴…그 심마니 집이지.”
지하철 객실의 노약자석,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한 자리 띄어 앉은 노인을 살펴보았습니다. 방한 등산복 차림의 발 앞에 묵직한 배낭을 놓은 그 분과 눈길이 마주쳤습니다.

본의 아니게 엿들은 통화. 대장암 환자인 그는 요양할 곳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왠지 발길이 탐탁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뭐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후다닥 배낭을 멘 충동 발걸음 같았습니다.

“댁도 암환자군요?”
그의 뜻밖의 질문에 황급히 고개를 가로졌습니다.
“댁의 그 열 손가락이 대답합니다. 그렇다고.”

8개월의 항암치료가 1년 4개월 전에 끝났지만, 그 후유증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발톱 열 개가 다 빠졌다가 새로 나왔으나 종아리 밑의 발목과 발은 늘 퉁퉁 부어 있습니다. 열 손가락의 지문에 차가운 것이 닿는 순간 자지러집니다. 감각이 무디면서도 통증까지 있어 단추 잠그는 옷은 아예 입지 않습니다.

“추위로 손가락이 곱기에…….”
거짓말이라는 걸 그가 눈치 채도록 능청스럽게 웃습니다. 여전히 열 손가락을 비비며 마사지합니다.

“무슨 암입니까?”
잠시 망설이다가 암은 끝내 죽음에 이르는 절체절명의 올가미가 아니라는 말부터 했습니다. 이어 그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암 투병 상황 설명을 전이된 부위 나열로 대신합니다.

“허 참! 그게 사실입니까?”
재발한 췌장암 수술 때 전이된 위, 십이지장, 담낭까지 다 절제한 사실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갑상선샘은 2008년 1월 췌장암 1차 수술 때 이미 다 떼어냈다고 덧붙이자 부정의 헛기침을 했습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마침 배낭가방에 2019년 말에 출간한 암 투병시집 ‘새 생명의 동행’이 있어 선물했습니다. 그가 표지 날개의 얼굴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기에 마스크를 살짝 벗어보이자 깜짝 놀랐습니다.

“맞네. 맞아!”
그는 멀쩡히 살아 있는 내가 신기한지 시집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보다가 긴 한숨으로 말했습니다. 댁에 비하면 나는 암 환자도 아니다, 대장암 하나로 안절부절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탄식했습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가시나 봐요?”
시집 31쪽을 열어주자 시를 단숨에 읽은 그가 빙그레 웃었습니다.

지난해 섣달 하순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대장암 환자. 올 겨울은 친구 심마니의 집에 머물며 설경을 즐길 것이라던 그의 쾌유를 기도합니다.

맑은 영혼의 노래 / 정병국

통나무집이든
너와집이든 상관없네

작은 도랑에 피라미 가재 노닐고
밤이면 풀벌레 지천으로 우는 곳

어쩌다가 심마니 인적이 고작이어도
심산유곡의 숨결 그 안에 누울 수 있으면 족하네

이슬 같은 샘물
한 사발에 보리밥 넘치도록 말아
산채나물 소찬으로 삼시(三時) 채우노라면

췌장암 툭툭 털어내고
맑은 영혼의 노래 부르지 않겠나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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