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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편지 박원명화 제4회] 재래시장 풍경

기사승인 2021.02.03  00: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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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랑이 깊게 파인 할머니의 장난기 젖은 웃음

[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장도 봐야겠고, 음식도 해야겠고, 집 안 청소도 해야겠고 그야말로 할 일이 태산입니다. 이 모든 일을 주부인 내 손을 거쳐야 한다는 게 버거운 숙제처럼 느껴져 은근히 짜증이 납니다. 명절이라고 뭐 특별한 날인가요. 흩어져 살던 가족이 다 함께 모이는 만큼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주부에게만 주어진 것처럼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가 아닐는지.

재래시장은 장 보러 나온 사람들로 만원을 이룹니다.

"사과 한 바구니에 오천 원! 오천 원에 몽땅 드립니다!"

"자! 싱싱하고 싼 야채가 왔어요. 말 잘하면 공짜도 드려요."

"바다에서 방금 헤엄쳐 나온 물오징어도 3마리에 단돈 만 원!“

상인들의 달콤한 유혹이 눈과 귀를 쫑긋하게 합니다.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 전화벨 소리, 음악 소리, 쉼 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 등등, 재래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삶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옵니다.

백화점에 가서는 몇 십만 원하는 것도 단돈 십 원조차 못 깎으면서 재래시장에 오면 천 원 달라면 백 원이라도 깎으려고 목청을 돋워 가며 흥정을 하거나 한 주먹의 덤이라도 더 달라고 떼를 쓰곤 합니다. 이 또한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해지는 못된 심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점포 옆, 차디찬 땅바닥에 깔아 놓은 푸른 비닐 위에 몇 가지 채소를 펼쳐 놓고 제발 사가라는 듯, 할머니는 애처로운 눈길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머리와 목을 목도리로 감싸고 있지만, 채소를 만지작거리는 주름진 손은 추위로 벌게져 으스스 떨고 있습니다.

문득 장날이면 농사지은 채소를 하늘 높이 이고 지고, 장터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새벽같이 나가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손님 한 사람이라도 놓칠세라 싸간 밥도 못 먹고 채소를 다 팔고서야 달 보고 별 보며 집으로 돌아오시던 어머니는 편하게 살면 안 되는 것처럼 평생 일거리를 몸에 붙이고 살았습니다.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낄 사이가 없다는 원리일까요.

어머니는 젊어 내내 몸을 쉴 사이 없이 굴리며 지냈음에도 늙어서까지 아파 누워 지낸 적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머니의 참 사랑을 먹고 자라서인지 자식 모두 건강한 삶을 영유하여 어머니도 더불어 걱정 없는 노년을 편안히 지내시다 당신의 소원대로 84세에 잠자 듯 영면하셨습니다.

집에서 농사지어 직접 만든 깻잎장아찌라는데 마음이 자석처럼 끌립니다. 코끝으로 전해 오는 깻잎 향기가 탐심을 재촉합니다.

"이거 다 얼마예요?

"만 오천 원 받아야 하는데, 만 이천 원에 가져가요"

"깎아 주세요"

"여기는 이발소가 아니니 깎지 못해요"

이발소? 생뚱맞은 말씀에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귀를 의심했다가, 머리 회전이 빠르게 움직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쿡’하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고랑이 깊게 파인 할머니의 온화한 얼굴에 장난기 젖은 웃음꽃이 한가득 피어납니다.

수필가 박원명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

박원명화 수필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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