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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24회] 엄지 척…멋져! 최고야!

기사승인 2021.02.23  0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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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kg의 피골상접, 아침저녁 한 시간씩 운동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인터넷에서 미라 사진을 검색했습니다.
실물을 본 적 없지만, 신문과 텔레비전 등 언론매체에서 숱하게 접했기 때문에 구태여 검색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욕실의 거울에 비친 몸을 볼 때마다 영락없는 미라라고 탄식하는 게 싫어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41kg까지 추락했다가 겨우 43kg을 유지하는 몸 상태를 민망하지만 그려보겠습니다. 신장 165cm의 몸은 한마디로 피골상접입니다. 양쪽 어깨의 쇄골은 깊은 웅덩이로 물 한 바가지를 부어도 넘치지 않을 겁니다. 겨드랑이도 그 계곡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깊어 비누질을 할 때 애를 먹습니다.

가슴뼈는 말 그대로 앙상하게 드러나 마치 생체의 뼈 박제 같고, 22인치 허리에 아랫배가 푹 꺼져 불두덩이가 민둥산으로 불룩 솟아 있습니다. 딱딱한 의자에 앉으려면 방석이 필요할 만큼 살 없는 엉덩이, 허벅지와 다리는 나무젓가락을 세워놓은 듯합니다.

15년째의 암 투병 환자라지만, 이렇게까지 무너진 육신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미라보다야 낫겠지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곧 중단했습니다. 시신 미라와 살아 있는 생명체와의 비교는 어불성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췌장암 재발은 곧 죽음이었습니다. 여기에 위, 담낭, 십이지장, 림프선 등 암 전이는 죽음의 확증으로 지난 13년의 투병을 한순간에 부셔버렸습니다. 편집이 완료된 ‘췌장암, 그 후 십년’ 제하의 투병 성공 원고를 삭제하며 피식피식 웃었습니다.

2018년 11월 20일, 충격이 워낙 큰 때문일까?
주치의가 심각한 표정으로 진료 설명을 할 때 저는 그냥 덤덤했습니다. 심지어 지금 누구 이야기를 하는 거지, 라는 의아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잠시 주치의와 저 사이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입원수속부터 하라는 말에 비로소 생명이 무너지는 현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입원 다음날 췌장 입구의 암 제거 로봇시술을 시도하다가 포기하면서 육신은 마치 눈 녹듯 녹아내렸습니다. 2019년 1월 31일 위와 십이지장, 담낭을 다 드러내고 췌장도 40% 또 절제하는 큰 수술로 몸은 반쪽이 됐습니다. 아침저녁의 항암제 복용과 월 1회 세 시간 반의 항암주사는 범람하는 대홍수처럼 온몸을 쓸어갔습니다.

8개월의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몸무게는 풍선의 바람 빠지듯 빠지다가 50kg을 유지하는가 싶더니 45kg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2021년 2월 하순 현재 43kg입니다. 체중 급강하에 빈혈까지 겹쳐 산책 중 쓰러져 119구급차로 실려가 찢어진 입술과 잇몸, 눈두덩이 봉합수술까지 받았습니다.

체중 불리기는 또 다른 암 투병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하루 여섯 일곱 끼까지 먹는 등 애를 썼지만, 허사였습니다. 오히려 당 수치만 높여 당뇨병센터 담당의사에게 인슐린 주사 처방의 경고까지 받았습니다.

이제는 체중 불리기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43kg을 적정 체중으로 알고,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씩 운동을 합니다. 욕실에서 맞닥트리는 피골상접 알몸의 투병 의지를 엄지 척으로 격려합니다.

“멋져! 최고야!”

43kg의 생명 / 정병국


때문일까

담낭과 십이지장까지
버린 탓일까

세 시간 반의 항암주사
아침저녁으로 먹는 열 알의 항암제
죽이라는 암세포보다
나부터 공격해서일까

43kg으로
주저앉은 땅
하얀 흙 한줌 끌어 모으다가
눈 감으며 귀 기울인다

구절초 꽃
백만분의 일도 안 되는
야생초 깨알 꽃들의 목소리

일어서세요
어서요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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