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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25회] 항암치료의 토악질 없는 행운

기사승인 2021.03.02  0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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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목욕할 때마다 변기부터 닦아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암 투병 환자에게 ‘목욕’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말이 목욕이지, 따뜻한 물 샤워 수준의 그것도 이삼일에 한 번꼴인데 매번 큰일 치르듯 합니다. 그만큼 체력이 바닥이기 때문입니다.

봄볕이지만, 바람이 쌀쌀했습니다. 그래도 꽃눈 잎눈 터지는 봄의 생명력에 이끌리어 청계산 기슭의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콧물 기운을 느껴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혼자 있을 때 절대로 하지 말라는 가족들의 신신당부를 어기고 욕실의 더운물을 틀었습니다.

꽃샘추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찬바람을 씐 몸이 따뜻한 물을 뒤집어쓰자 현기증이 밀려왔습니다. 아들이 챙겨준 등받이 의자에 앉아 현기증을 달래다가 좌변기를 바라다봅니다. 2008년 2월 방사선과 항암치료에서 시작된 고통의 기억에 진저리칩니다.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항암치료는 온갖 고통을 동반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구토였습니다. 침을 삼켜도 올라오는 구역질은 하늘을 까맣게 부셔버리며 곤두박질치게 했습니다.

변기를 끌어안고 대성통곡하다가 목이 쉰 불효자의 울음처럼 겨우 꺼억꺼억 토악질하며 눈물을 줄줄 쏟았습니다. 결국 혼절 직전까지 갔다가 자리에 누우며 그만 끝내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 싸움이 또 다시 해야 할 2019년 2월 중순 첫 항암주사를 맞는 3시간 40여 분은 절망의 깊은 수렁이었습니다. 췌장암 재발은 수술해도 예후가 안 좋아 대부분 몇 개 월 만에 사망에 이른다는 의학적 통계와 2008년에 겪은 항암치료 후유증의 공포는 한마디로 참담, 그것이었습니다.

주사바늘이 꽂힌 왼쪽 팔이 마비되는 느낌과 함께 통풍처럼 살짝 손길이 닿아도 자지러질 만큼 통증이 소용돌이 쳤습니다. 그 소용돌이는 열 발톱으로 번졌고, 열 손가락 끝마디도 차가운 물건은 거부해 수저를 나무 제품으로 바꿨습니다.

차가운 음식도 입에 댈 수 없었습니다. 한번은 무심코 메밀국수의 찬 양념장을 한 숟갈 떠먹었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딱 한 모금, 그것도 아주 적은 양이었는데 소장과 대장까지 파삭 부셔지는 통증과 함께 혀까지 마비되어 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8개월여 항암치료를 끝낸 지 1년 5개월이 지난 2021년 2월 지금은 이런 증상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발톱도 새로 돋았고, 손가락 끝마디의 감각도 상당히 살아났습니다. 냉커피를 마셔도 속이 부셔지지 않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에도 놀란다더니 지레 겁먹을 탓이었을까. 2008년 항암치료 때 그렇게 힘들었던 구토증을 이번에는 단 한 번도 겪지 않았는데 그 사실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고 얼마나 한심했는지 모릅니다.

세상에 나처럼 한심한 암환자가 또 있을까. 탄식하다가 변기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항암제 복용에 항암주사에도 토하지 않은 그 이유를 아는 순간 눈을 감았습니다. 위와 십이지장, 담낭까지 다 잘라냈으니 토악질할 근거가 없었습니다.

위 등 주요 소화기를 버리자 토악질 없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하나를 버리자 새로운 하나가 생겼습니다. 뒤늦게 그 고마움을 변기를 하얗게 닦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이제는 목욕할 때마다 변기부터 닦으렵니다.

하나를 버리면 / 정병국

낮과 밤마다
열두 번도 더 끌어안고
토악질하던 하얀 변기

십사 년 후
쪼그려 앉아 눈부시게 닦다가
허허 웃는 가슴에
스며드는 눈물

8개월의 항암치료에도
한 번도 토하지 않은 기적
발원지를 찾다가
잘라낸 위 CT동영상을 떠올린다

하나를 버리면
새로운 하나를 얻는
신의 자비

스물 네 시간 지독한 울렁임에도
십이 년 전처럼 토하지 않는 기적에
헛기침으로 감사하는
칠십오 세의 노인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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