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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편지 박원명화 제7회] 길

기사승인 2021.03.17  01: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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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

[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예술의 전당을 찾아갈 때의 일입니다. 버스에서 내릴 즈음 이미 어둠은 짙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길눈이 밝지 못한 탓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길눈이 어둡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몇 번인가 가던 길도 가끔은 아슴푸레한 게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길 가던 사람에게 예술의 전당이 어디쯤에 있느냐고 물어보니 그는 잘 알고 있다는 듯 직진해 그대로 올라가면 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그가 일러준 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얼마를 갔을까요? 어림잡아 이쯤이면 건물이 보일 만도 하거만 길이 왠지 자꾸만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시계를 보니 공연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잘못 온 건가 싶어 또 다시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알려준 그 반대 방향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되돌아오던 길을 잰걸음으로 내달았지만 내가 찾는 낯익은 건물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또다시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 내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에 불을 댕긴 듯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정장을 챙겨 입고 높은 구두까지 신고 나온 걸 후회하면서. 간신히 공연 직전 입장을 했지만, 몸과 마음이 지친 끝이라 기대만큼 공연이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삶의 길도 그렇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길을 가고 있을 때, 가던 길 멈춰 서서 내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를 물어보곤 합니다. 세상에 길은 많습니다. 오솔길, 에움길, 샛길, 갈림길, 언덕길, 하룻길, 비탈길, 등등 불러 줄 이름도 다양합니다. 길은 사람들이 걷고 또 걸어서 만들어낸 발자취입니다. 걷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과 마주칠 때도 있습니다. 삼거리나 사거리에서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채, 어디로 가야 할지 우두망찰 서서 생각의 흔적을 찾아야 하는 난감한 일에 맞부딪칠 때처럼 어색한 일도 없습니다.

낯선 길을 갈 때의 경험은 살아온 뒷모습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끝도 보이지 않은 어둡고 깜깜한 무저갱(無底坑)속으로 낙하하는 것처럼 막막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남 따라 무작정 길을 가다가는 자칫 우왕좌왕 헤매다가 삶의 시간들만 덧없이 흘러 보낼 뿐입니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의, 살아갈 날들에 대한 기약 없는 두려움, 허상을 쫓아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만 하는 인생길에 서서는 ‘봄날은 간다’며 서러워합니다. 가끔은 기분에 따라 가야 할 길을 외면하고 모험의 길을 선택해 떠나기도 하지만 그 역시 낯선 만큼 고난의 여정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나는 내가 가는 길에 자신이 없습니다. 문학이 좋아 작가의 길에 들어서긴 했지만 문학이라는 저 넓은 마당 한가운데에서 나는 정녕 내가 꿈꾸는 소망의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인지 아직도 멈칫멈칫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수필가 박원명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

박원명화 수필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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