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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29회] 참새의 자유로운 나래가 부러워

기사승인 2021.04.06  08: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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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얗게 꽃눈 틘 매화나무와 즐기려던 봄 햇살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추적추적 봄비가 내립니다.
날씨도 확인하지 않은 채 산책 나가려다가 창밖 빗줄기를 바라봅니다. 꽃눈 숨결이 하얗게 틔는 매화나무 곁에서 봄 햇살을 즐기려던 가슴에 원망이 쌓입니다. 새벽녘까지 단편소설을 퇴고하다가 늦잠에서 일어나며 봄볕 나들이부터 떠올렸습니다.

코로나19와 꽃샘추위로 옴짝달싹도 못한 몸과 마음에 봄볕 생기를 가득 채우려던 참이었습니다. 암 환자에게 무너지지 않는 생기야말로 장기투병을 견뎌낼 의지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주요 소화기관을 다 들어내고 췌장암 재발에 림프선까지 전이된 칠십 중반의 중증 암 환자에게 바깥나들이는 쉬운 발걸음이 아닙니다.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찬바람이 살짝 스쳐도 마치 통풍처럼 파고드는 열 손가락의 끝마디 통증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새까맣게 죽으면서 빠진 두 엄지발톱이 새로 돋았지만, 보기 흉한 기형입니다. 걸을 때마다 엄지발가락에서부터 발목까지 휘몰아치는 통증은 뜨겁게 달궈진 못 판을 걷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항암치료를 받은 지 만 2년이 지나자 많이 해소됐지만, 발과 발목의 퉁퉁 부은 부기는 여전합니다. 양말의 목을 터트려 신어도 끈으로 칭칭 감았던 것처럼 정강이를 파고듭니다. 무릎 아래를 비트는 지독한 통증의 쥐도 자주 일어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매우 긴장합니다.

봄이 왔으나 두꺼운 내복에 패딩을 입어야 외출할 수 있으니 아직은 한겨울인 셈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꼭 코로나19 감염 바이러스 아니라도 아파트에 갇혀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암 환자가 되기 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8km씩 달렸던 양재천이 5분 거리인데 지금은 천 리 밖입니다. 갈 수 없는 땅입니다.

결국 빠져나갈 틈이 있어도 그 길을 갈 수 없는 존재, 절대 권력자의 지상명령이 아니어도 스스로 자가 격리하는 중증 암 환자의 일상은 웃음이 사라진 암울한 공간입니다. 그 무거운 공간에서 나가 잠시 잠깐 꽃눈 터진 매화나무와 함께 봄볕을 즐기며 챙기려던 생기가 깨졌으니 하늘을 원망할 밖에요.

비를 맞는 매화나무에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습니다. 둘레를 살펴보다가 곧바로 매화 가지를 떠납니다. 참새가 날아간 쪽으로 목을 길게 빼다가 돌아섭니다. 참새의 자유로운 나래가 부러운 마음을 달래러 보리새싹 차를 준비합니다.

하얀 찻잔의 따뜻한 체온과 은은한 향을 두 손으로 감싸며 미생불명의 바이러스 감염으로 1인 입원실에 격리됐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한 바퀴 144m의 입원실 복도를 걷다가 납치당하듯 다급하게 격리된 그날의 충격은 절망이었습니다.

미생불명의 정밀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1인실 격리 처방에 전신의 맥이 빠져나갔습니다. 복도 걷기 운동으로 겨우 찾았던 몸과 마음의 생기도 흔적 없이 사라지면서 절해고도로 추락하는 절체절명이었습니다.

격리된 1인실 / 정병국

리모컨으로 조정되는 대형 창문 블라인더
그 밑의 긴 소파 작은 탁자와 의자 3개
냉장고 옆 수도가 또 있고
텔레비전의 자유로운 시청 1인 입원실

첫날은 불안했고
둘째 날은 편안하더니
사흘째 날부터 슬금슬금 기어 다니는
외로움과 답답증

미생불명의 바이러스로
가족마저 못 오게 한 입원실은
완전 고도(孤島)
간호사와 회진 의사의 독재지배지이다

회진 대화는 고작 일분
그조차 감지덕지가 된 1인실 격리
오늘은 너무 아프다

누군가와 허튼소리라도 하고픈
2019년 2월 중순 금요일 오후
오늘 따라 간호사 출입도 뜸하다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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