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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편지 박원명화 제8회] 베란다의 봄

기사승인 2021.04.07  0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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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음의 황홀한 기운도 스며드는 곳

[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사방이 시멘트벽으로 둘러싸인 아파트 베란다는 속박되지 않은 자유의 공간이다. 주택으로 치자면 일종에 마당 같은 곳이다. 장을 담아두는 장독대로 쓰거나 화분을 놓아 나만의 아기자기한 정원을 만들어 놓고 화초가 자라는 걸 보며 내 나름 계절의 경계를 허무는 마음의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이웃과의 거리를 조정하기 위한 수납공간인 창고는 정리되지 않은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장소로 적합하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애연가들에게도 베란다는 피난처 같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왼쪽 구석진 곳에 3단의 선반이 있다. 여기에는 창고에 다 들어가지 못한 살림들을 채워져 있고 그 아래 창문 방향으로 간장, 된장, 고추장 소금이 담긴 장독대가 대여섯 개 줄지어 있다. 오른쪽으로는 빨래대가 천장에 매달려 있어 창밖 햇살을 끌어들여 빨래를 고슬고슬 말려준다. 거실 정면으로는 크고 작운 화분들이 모여 작은 뜨락을 이룬다.

화초가 있으면 보기에도 좋고 채감의 느낌도 시원하다. 집안에 앉아 푸른 잎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마음에 편안한 안정감을 준다. 어쩌다 꽃을 피우거나 은은한 향기를 방산할 때면 온 집안이 환해지는 듯 밝은 기운이 솟는다. 밀려있던 집안일을 마치고 차 한 잔 들고 거실소파에 앉아 있으면 무심히 화초들이 눈에 들어온다. 홀짝홀짝 마시며 계절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화초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생활에 쫓겨 흐트러진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편안한 여유와 사색의 미학에 빠져든다.

요즘 들어 베란다로 나가는 횟수가 빈번해진다. 세상이 화려해질수록 마음이 고독해진 탓이런가.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가슴 답답한 일이 생기거나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나도 모르게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간다. 아무것도 거치적거릴 게 없이 펑 뚫린 창 너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하고 상큼해진다.

날씨 맑은 봄이면 방안에 있기보다 베란다 뜨락을 어정거리는 시간이 더 많다. 창 너머 흐드러지게 핀 벚꽃의 장관은 이름난 명승지 못지않게 아름답다. 아래서부터 언덕 위까지 길도 사람도 건물도 가려진 체 봄빛 가득한 풍경을 이루고 있어 훈풍의 설렘을 가득 채운다. 방안에 있어봤자 컴퓨터에 매달려 있거나 집안일을 찾아 하는 게 고작이지만 베란다에 나가면 생기 넘치는 생명들도 만나고 살아있음의 황홀한 기운도 스며드는 게 느껴진다. 자연이 아니었다면 계절의 변화조차 모르고 살지 않았을까 싶다.

수필가 박원명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

박원명화 수필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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