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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39회] 암 투병이 재치로 가능할까요?

기사승인 2021.06.15  00: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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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들은 미련한 사람이라고 절레절레 도리질

[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문득 58년 전 고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당시 교회 주일학교 반사로 일요일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교회 바로 뒤 큰 무덤 잔디밭에서 공부할 때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 얼굴 보셨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이해할까, 막막했습니다. 아이가 놀리듯 또 물었습니다.

“하나님 없죠?”
그때였습니다. 약했던 산바람이 갑자기 강하게 불었습니다. 쑥쑥 자란 풀잎이, 나뭇잎이 흔들렸습니다. 아이들 머리카락도 날렸습니다. 그 순간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저 풀잎이, 나뭇잎이 왜 흔들려요?”
“바람 때문에요.”
“아! 그래요. 그럼 바람이 보이나요?”
“안 보여요.”

“맞아요. 바람처럼 하나님도 안 보여요.”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시지만,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으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까맣게 잊었던 기억에 빙그레 웃습니다. 고교 일학년이 참 재치 있었다 싶은 웃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살 만큼 살았는데 ‘참 미련한 사람이다’ 싶습니다. 티끌만 한 융통성도 없는 고집불통에 어리석어 구제불능의 늙은이다 싶습니다. 2008년 1월 췌장암 첫 수술에서 2019년 1월 재발과 전이로 위 등 소화기관을 다 드러냈지만, 진통제를 거부했습니다.

진통제 없이 일어서고 싶었습니다. 또 주위의 암에 좋다는 온갖 약초와 보양 음식도 다 거절했습니다. 오로지 병원에서 처방받은 식단만을 고집하며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으로 투병했습니다. 공기와 물 맑은 산속 요양보다 평상시처럼 소설을 쓰고 출판사도 운영했습니다.

문인들의 모임 문학회도 만들어 함께 공부하고 가르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좀 더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투병 생활을 마다한 저를 지인들은 어이없고 미련한 사람이라고 절레절레 도리질합니다. 아예 외계인이라며 ‘어느 별에서 왔느냐?’ 묻는 짓궂은 친구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샤워하다가 40㎏의 몸을 보며 여기서 더 내려간다면? 39㎏이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건가, 자문했습니다. 솔직히 대답을 ‘예’ ‘아니오’의 선택보다 과연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하는 게 투병인가 갈등이 먼저였습니다. 오로지 첨단의 현대의학과 의사 의술을 그리고 내 의지를 믿는 것이 우매한 행동인가, 잠시 잠깐의 혼돈도 뒤따랐습니다.

암 투병이 재치로 가능할까요?
정말 그럴까요? 팔랑 귀로 좋다는 거 재빠르게 섭취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면 암으로부터 훨훨 탈출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껏 하던 대로 소설과 수필, 시를 쓰며 암과의 동행을 이어갈 겁니다. 그가 내가 싫어 떠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선택의 용기와 집념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과 정을 나눌 것입니다.

사랑으로 / 정병국

이제서
당신에게 용서구합니다

피 튀던 증오가
어느 날 애증으로 무너지면서
돌아본 지난 세월
그 바닥에는
시퍼런 사금파리 절망뿐이었습니다

위안의 꽃다발 하나 없는
칠십삼 세의 다종 중증암환자
막다른 골목에 쪼그려 앉은
숨 쉬는 미라입니다

왜 하필 나인가
문병 온 사람마다
묻고 또 묻고 싶었던 어리석은 늙은이
아직 버리지 않은 신에게
삼배로 약속합니다

작은 글이지만
투병의 진실을 담겠습니다

※정병국 암투병기 시집 53쪽 전문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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