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ad47

[박소향의 다듬이 소리 43회] 그 자리가 바로 노년의 공간

기사승인 2021.07.12  07:49:10

공유
default_news_ad1

- 흰머리 그대로 다니겠다는 생각이지만

[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어느 날부터인가 새치를 셀프 염색하며 귀찮다는 생각보다 그 불청객을 조금이라도 더 안 보이게 하려고 애쓴다. 주기적으로 하는 그 염색 작업이 슬슬 귀찮아질 무렵 유전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하는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증조할아버지의 사진이었다.
어릴 적 기억에도 증조할아버지는 흰 수염에 백발을 한 모습이셨는데 꼭 산신령 같았다. 늘 사랑방 툇마루에 앉아 긴 곰방대를 탁탁 두드리시거나, 마당에서 노는 어린 손주들을 바라보시거나, 헛기침하며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할아버지의 백발과 흰 수염은 분명 유전자 때문이리라. 형제나 사촌들 모두 새치도 많았다. 백발로 다닐 만큼의 나이가 아니니 늘 염색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툇마루에서 찍은 할아버지의 흑백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반가운 마음에 옛 생각에 잠기기도 했지만, 그 순간 유전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실감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흰머리 그대로 다닐 생각이다. 그럴 자신이 생길지는 아직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새치가 보이면 가차 없이 머리카락이 상하든 말든 열심히 염색하고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거쳐야 하는 노년, 그 자리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흰 머리와의 사투. 아무렇게 쓸어 넘겨도, 아무렇게나 묶어도, 흰 머리 보일 걱정 없었던 젊은 날들이 그립다. 그 젊은 날도 언젠가는 지나가고야 만다는 것을 그때도 몰랐다.

언젠가는 새치에 탈모로 젊음도 함께 가 버린다는 것을 실감하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노년이라는 계절이 차지하는 생의 공간이다.

여름의 더운 밤, 산신령 같던 사랑방 할아버지를 떠올리며…박소향

시인 박소향
한국문인협회과 과천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와수상문학 사무국장과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박소향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73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