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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향의 다듬이 소리 49회] 보약 같은 그녀들의 수다

기사승인 2021.08.30  07: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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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것은....

[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있다.
역시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여자인가보다.
수다가 한창인 그 틈에 살짝 끼어들어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 보았다.

대부분 70대 후반에서 80세를 넘긴 그녀들의 수다는 당연히 멀고도 아득한 과거의 이야기였다. 10대 때에 전쟁이 발발했는데 피난 가던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와 자고 간 이야기.

밤새도록 멀리서 들려오던 공포의 포탄소리, 쫓기던 인민군들에게 밥을 해 주던 이야기 등등.

누가 들으면 역사책에나 나올법한 실감이 나지 않는 동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수다들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 보는 것도 재미가 있어서 자꾸만 끼어들었다.

모두 어머니 세대인 그녀들. 아니 어머니 같은 그녀들. 키도 크고 젊어서는 얼굴도 예뻤음직한 그녀들. 한 때 남자들의 로망이었을 그녀들, 남자들은 일터나 전쟁터로 나가고 가난과 싸우며 자식들을 키워냈던 그녀들.

어떻게 보면 그런 그녀들의 희생과 젊은 날의 고생이 있었기에 지금 이런 행복한 현실이 있지 않나 싶을 만큼의 짠한 수다들.

시골 동네를 다니며 옷 보따리를 이고 장사를 했다는 그래서 지금 머리가 쑥쑥 쑤시고 눈도 아프다는 그 어르신은 자그맣고 하얀 손을 가진 소녀 같고,

욕쟁이 할머니로 소문난 이 어르신은 자기 눈에 거슬리는 모든 것에다가 대고 욕을 냅다 하시는데 그 욕이 그냥 우스워서 웃어 버리게도 한다.

“그래, 예전에는 다들 한 몫 하셨겠지. 열심히 살면서 지금의 이날까지 오셨겠지.“
늙고 주름진 얼굴에 투석도 하며, 치매도 앓으며, 어린아이같이 수발을 받고 있지만 옛날에는 다들 잘 나가셨겠지. 그런 밑바탕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겠지.

늙은 그녀들의 수다에 한참이나 같이 섞여 있다 보면 그 수다 속에 삶과 인생이 뒤섞이어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간다. 갑자기 똑같은 퍼머 머리를 하고 앉아 수다를 떠는 그녀들이 참으로 위대하고 존경스러워 보인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통로에 그녀들이 있었다. 여전히 사랑스런 모두의 어머니로....

붉은 살 점 몇 개 남기고 저녁 빛 속으로 사라지는 능소화 꽃잎
누군가는 또 침묵처럼 소리 없이 늙어간다......박소향

시인 박소향
한국문인협회과 과천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와수상문학 사무국장과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박소향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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